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앞에서 어머니 몰래 ‘땅 팔아먹은 사건’을 이야기 했는데 먼 놈의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냐는 동생들의 원성을 이기지 못하다가 겨우 찾아낸 ‘바람직한 사건’인 ‘주택 신축 비사’를 소개한다.

이것으로 균형을 맞춰서 다소 지루하였고 사적인 어머니 이야기 끝낸다. 소식 빠른 어머니가 신문에 ‘광고’했다는 소문 듣고 ‘해 보자는 것이냐’며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면 그것 또한 이득 될 것이 없다는 사실도 어머니 이야기 빨리 끝내자는 생각에 기여했다.

‘∼비사’ 들어가기 전에, 우선 사실 여기서 처음 하는 비밀이지만 어머니는 ‘밑자리가 짧아’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성남 딸네 며칠, 안산에 며칠, 인천에 며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횡 하니 시골로 내려가 버린다. 꼭 성격 탓만 아니다.

아파트에 틀어 박혀 텔레비전만 보거나 노인정을 오가는 도시 생활이라는 게 애초부터 밋밋해서 사방이 훤히 뚫린 마을회관 마루에 앉아 포기김치 좍좍 찢어가며 웃음꽃 피우는 농촌 생활만 하겠는가.

도시 아파트에서는 송해의 전국노래자랑도 여섯시 내 고향도 필요 없다. 어머니는 그저 신안군 대기리 이 밭고랑 저 들길 오가며 농사 참견하고 동네 사랑방에 가서 대장 노릇하고 사시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논둑길 가다가 어느 낯선 청년이 ‘조반 잡수셨습니까 어르신’ 하면 ‘뉘집 자식이신가, 성은 무엇인가, 조부님이 뉘신고’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밑자리가 길게’ 늘어놓으시면서 뱃시간 바쁜 청년 부부 붙잡는다.

어머니가 현재 사시는 시골집은 십 몇 년 전에 신축한 집이다(‘3번 새집’이라 하겠다). 이 집터는 시집 와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떠남 없이 살고 있는 곳으로 시부모님이 사셨고 당신 지아비가 태어나고 갔으며 누님을 필두로 2남 4녀 형제들이 줄줄이 탯줄을 자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릴 적 우리 집(‘2번 옛집’이라 하겠다) 구조는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우람한 배흘림기둥이 나이테를 있는대로 다 노출하고 있었고 이끼 낀 고색의 기와가 하늘을 무겁게 이고 있는 전형적인 중 기와집이었다. 이런 집들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마당은 예배당처럼 깔끔했고 또 으레 그래야 되듯이 뒷마당에는 늙은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있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굵고 높은 그 대추나무에는 참연·방패연·가오리딱지연이 무분별하게 걸려있어 대추나무에는 연이 잘 걸린다는 것을 사정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가옥은 크게 본채와 건너채로 구성이 되어있었는데 가운데는 넓은 안방과 아담한 모방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국민학교 강당처럼 반질반질한 대청이, 또 건너채에는 건너방과 곳간이 딸려 있었다. 좀 떨어진 별도의 사랑채에 외양간과 진광이 있었다.

진광이란 오래 저장하며 두고 먹는 음식 재료를 보관하는 광을 말한다. 본채 가장자리의 작은방은 영방으로 쓰고 있었는데 조부님 조모님 영정 앞에 끼니 때마다 더운 밥과 국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또 사랑채에 딸린 외양간에는 닭 횟대가 걸려 있었고 유난히 큰 눈이 슬퍼 보이는 싯누런 황소가 코를 씰룩거리며 김이 펄펄 나는 여물을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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