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안산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열흘 전쯤 주말을 맞아 지방에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영광법성포를 지나 고창 선운사로 차를 몰았다. 친구들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이제 묻지도 않는다.

선운사는 구름에 머무르면서 선정의 경지를 얻는다는 산사, 이 고장 출신 미당에게 그 구름은 자유로움 쯤 되었으리라.

올 적마다 ‘이리저리’ 구름처럼 자유롭게 살다간 미당이 생각나고 그를 생각하니 막걸리집 여인의 목쉰 육자배기 소리가 선운사 골짜기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어딘가 고운 색시가 초록저고리 다홍치마 입고 40년 동안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아 있을 것도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가을의 한 복판, 곧 겨울이 올 터인데도 선운사 양지쪽에 당도하니 누가 말했듯이 ‘잘 있는 가을과 오는 겨울이 세월에 걸터앉아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는데 눈치없이 그 자리에 끼어 함께 막걸리 한 잔 하기 딱 좋은 남도 여행길이었다.

해질 무렵 무창포로 들어와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단풍 보러 온 초딩 동창생 녀석들을 만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월의 무게는 견딜 수 없었던지 한 해 사이에 머리는 반백으로 덮였고 잔주름은 늘었는데 친구들 잔주름 내가 펼 수 없다.

주름진 그들 얼굴 속으로 내 얼굴을 보고, 질펀한 사투리와 구수한 욕설에서 깜빡 잊었던 고향의 향수를 찾아낸다. 그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고이시던 생각에 잠시 잠겨본다.

여장을 푸니 몸도 풀어져서 나는 작정을 하고 온 사람처럼 세수대야만한 대접에 맥주와 소주를 13대 8 황금비율로 섞고 미원을 친 다음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가시나 머시마 가릴 것 없이 돌려가며 벌컥벌컥 마시게 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싯적 이야기, 얼굴은 발그스레 취기가 돌고 옛 이야기에 흠뻑 젖은 그놈들은 날 새는 줄 몰랐다.

이튿날 아침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차창을 열자 어제와는 다른 낯선 찬바람 하나가 싸하게 불어왔다. 신안 섬에서 어머니를 뵙고 함평천지 돌아 선운사와 무창포를 경유하여 올라오는 사이 한 철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골에 다녀온 후 신문사에 뭘 보낼까 고민하는데, 어머니 몰래 땅 팔아먹은 이야기가 무슨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냐고 동생들 원성이 카톡에서 ‘깨깨똑’ 분주하다.

이래저래 세상은 살기가 녹녹찮다. 바빠 죽겠는데 그래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그렇지’ 하며 오래된 메모 속에서 ‘배신의 땅 매각 사건’과는 대칭되는 ‘바람직한’ 일화 하나를 찾았는데, 이것으로 기울어진 균형을 반반하게 맞추면서 어머니 최수진 여사 이야기 서둘러 끝낸다.

‘주택 신축 비사’라는 좀 엉뚱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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