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제주시 남녕고등학교 3학년 김수빈

나는 납골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워낙 외진 길에 있고, 안개가 껴서 흐릿한 버스 정류장이었기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유골함이 들어있는 가방을 꼭 껴안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아보니 포니테일 머리에 운동복 차림을 한 여자가 입을 모으고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휘파람 소리는 잔잔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생각할 때쯤, 365번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나와 그 여자는 앞뒤로 줄을 서 교통카드를 찍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차가운 기계 음성이 들렸다. 내 뒤엔 여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나를 재촉했다. 결국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의자의 차가운 기운은 내 몸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핸드폰 뒷면에 교통카드를 대어 남은 잔액을 확인해보았다. 버스의 번호와 똑같은 365원이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니 소매가 다 헤진 티셔츠와 빨래를 하지 않아 쭈글쭈글해진 바지가 보였다. 옆에서 누군가 털썩 앉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운동복 차림의 그 여자였다. 여자는 눈을 감고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된다는 것처럼 보였다.

가방을 앞으로 고쳐매어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 있는 유골함들을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유골함에는 나의 부모님 이름이 써있었다. 내가 유골함에 써져 있는 이름이 부모님 이름이라고 말해도, 여자는 당황한 기색 없이 계속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은 예고 없이 돌아가셨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밤이었다. 부모님은 찌개에 넣을 두부가 없다고. 그 작은 두부 하나 때문에 마트에 다녀온다고 했다. 나는 진학 문제로 부모님과 다툰 터라 내 방을 나가지 않고 부모님께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부모님과 나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부모님은 인도로 갑작스럽게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도대체 부모님은 왜 그런 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건지.

나는 경찰서로 가서 부모님을 친 가해자의 얼굴을 보았다.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흥분해서 그런건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장례식도 급하게 치뤘다. 부모님 모두 본가와 연을 끊고 지낸 터라 장례식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복도를 지나가다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을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장례식장 구석에 멍하니 앉아 향을 피웠다. 내 옆에서 장례 지도사가 뭐라고 말했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 유골함은 챙겨서 집에 두었다. 부모님을 집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준비가 되면 납골당에 가자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나 보다.

나도 장례식장에 있었어요. 안개가 걷히고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머리에 있던 꽃잎을 떼어 나에게 주었다. 우리 아이 거에요. 납골당 안에 같이 넣어줄 수 있겠어요? 나는 눈을 감고 여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여자는 임신하다 아기를 잃었다. 꽃들을 보면서 여자가 휘파람을 불면 아기가 발로 배를 찼다. 아기를 잃고 여자는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도 하염없이 휘파람만 불었다. 거기서 여자는 나를 보았다. 텅 빈 내 눈을 보고 여자는 말을 건네려다 꾹 삼켰다. 교복을 입은 나를 보고 여자는 학생임을 짐작했다. 다음 날부터 여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피폐해진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 그리고 아침에 등교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학교에 가는 건 아니었지만 여자는 결국 성공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기다렸다. 365번 버스가 다시 오고, 여자가 나의 버스비까지 대신 내주었다. 가는 길에 참았던 잠이 쏟아졌다. 고개를 꾸벅거리다가 여자의 어깨에 기대었다. 의자에 앉아 차가웠던 몸이 편안해졌다. 어릴 적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갈 때 기대어 잠들었던 엄마의 따스한 어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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