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경상남도 양산시 서경연

 

찰박찰박한 논물에서 키워 온 몸집이다. 바닷게는 서해에서 내려와 담수와 섞이는 연안까지 긴 여행을 하지만, 참게는 겨우 아버지 복숭아뼈 근처의 논물에 한 生을 빠뜨려서 놀다 간다. 참게의 푸른 검은색 등껍질은 둠벙의 색깔을 닮아 은신하기에 그만이다. 푸른 검은색 등껍질은 저물녘 이끼의 빛깔을 뒤집어쓴 채 잠을 자고, 둠벙에도 “첨벙”하고 어둠이 빠져든다.

나는 뜰채를 들고 둠벙의 바닥을 훑는다. 가라앉은 진흙을 다시 일으켜 참게의 잠을 깨운다. 묵직한 뜰채, 게의 파닥거림이 오른쪽 어깨를 타고 오른다.

“후유” 나는 손전등으로 뜰채를 비추며 암게를 가려낸다. 배꼽 딱지가 삼각형이 아니라 둥그스름하면 그것은 암게다. 게는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의 중심, 자기 배꼽을 향하여 가늘고 긴 다리를 포갠다. 오래된 시곗바늘 같은 게의 긴 다리들은 버둥거리며 7시 20분을 가리켰다가 다시 3시 50분이었다가 계속 맞지 않는 시간대를 오르내린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긋나 버린 관계들, 해직 기자였던 1970년대를 살아가는 2023년의 아버지, 스위스에서 독일 남자와 결혼한 여동생은 “바깥 풍경이 천국 같다고 한 것이지, 내 마음이 천국이란 말은 절대 아니야.”라고 한다. 우리는 제각기 불화와 불우의 이유, 몇 가지쯤은 비밀처럼 가지고 산다.

미등을 켜놓고 마당 한 귀퉁이에서 게를 씻는다. 은근히 끓고 있는 간장 냄새가 앞으로 있을 게의 운명을 말해주는데, 게는 대야 안에서 몇 번이고 똑같은 탈출을 감행한다. 망망대해에 점을 찍은 듯 두 개의 촉각 옆에 붙은 게 눈은, 물렁거리는 육지의 햇빛에 눈을 바로 뜨지 못한다. 순간순간 변하는 햇빛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한다. 게는 햇빛의 눈부심에 반쯤 눈이 멀어 더 이상 황홀할 수 없는 햇빛의 군무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나 게는 투망에 걸리고야 만다. 햇빛은 복선이었다. 햇빛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게는 애초에 잡힐 일이 없었다. 게는 죽을 운명이었기 때문에, 햇빛에 다가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운명이라는 것이 드라마처럼 시시해진다. 내 생의 복선은 무엇일까? 온종일 이발소 앞에 서서 돌아가는 싸인볼을 바라보고 있는 자폐 아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말문을 닫는 남편, 이건 불화가 아니라 불우한 거야. 쌀을 씻으며 나는 중얼거린다.

눈이 부시지 않아서 좋은 저녁이면 게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나는 늘 저녁에 게장을 담는다. 먼저, 칫솔로 게를 씻어 깨끗이 헹군다. 채반에 받쳐 약 30분 동안 물을 빼준다. 게는 간장이 잘 스며들도록 뒤집어 차곡차곡 넣는다. 게에 식힌 간장을 부을 때, 유리병 속의 게들은 섬처럼 고요했다.

납작한 게의 등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긴다. 간장이 쏟아져 들어갈 때, 게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온 팔로, 온 품으로 알을 껴안았을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미는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떨어져 나간 자신의 길고 가는 다리쯤이야 잊어도 좋았다. 아니, 잊혀도 좋았다.

나이 마흔에 뇌졸중을 맞은 엄마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왼쪽 수족을 달고 윗목까지 오른손으로, 오른쪽 엉덩이로, 장판을 밀어서 갔다. 윗목에는 어느 법사라는 사람이 꼬드겨서 맞춘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참외가 달콤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뻬에에. 뻬에에...”

엄마는 고장 난 태평소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어느 신에게 기도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었다. 나이 마흔의 여자인 엄마는 대소변도 모두 남의 손을 빌려 해결해야 했고, 대신 마지막 부끄러움조차도 저당 잡혀야 했다. 자기 엉덩이를 자기가 닦을 수 있다면 그래도 인생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는 어느 노인의 말은 나를 울게 했다.

온종일 마당의 햇빛만 보고 누운 엄마에게 지붕의 그림자는 유일한 친구였을 것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지붕의 그림자는 엄마에게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을 알려주며 차츰차츰 짧아져 갔을 것이다. 아침, 뒤란 우물까지 내려온 지붕의 그림자는 한껏 목을 축였었다. 그리고 마당에 드러누워 제 살들을 말렸다.

삐거덕,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다. 이 고요한 대낮에 엄마를 찾아올 손님은 바람뿐이다. 엄마는 그렇게 하루를 넘겼을 것이다. 온몸이 아니라 반 편의 몸이 되어 느슨하게라도 기다리던 자식들을 껴안았을 것이다. 간장 대신 어둠이 울컥울컥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엄마는 오늘도 자식들이 무사했음을 안도했으리라. ‘사지 멀쩡하고’라는 말이 어느새 엄마에게는 너무 아픈 말이 되어버렸다.

1주일 후, 유리병의 간장을 따르고 다시 간장을 끓인다. 오디처럼 시커먼 간장이 다시 유리병 속으로 쿨렁쿨렁 쏟아져 들어간다. 게는 머루같이 새까만 간장으로 눈물을 해감한다. 잡혀 온 게들은 모두 어미게다. 산란을 앞둔 어미 게들은 알을 감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물의 쏠림이 적은 민물과 바닷물의 접경지대까지 올라왔다. 결혼이 내 생의 접경지대인 줄로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첫 번째가 될 수는 없는 새어머니와 며느리를 딸로 생각한다는 시어머니 두 분 사이에서 나는 누구를 선택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맹숭맹숭하기는 두 분이 비슷하지만, 새어머니는 일절 내 생활에 관해 묻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다.

“제삿날 밥을 지으면, 밥 위에 게 등딱지 같은 것이 선명하다. 조상님 중에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분들이 계신다. 너도 앞으로 제삿밥을 지을 때 살펴보아라. 무슨 문양이 나타나는지를. 그리고 앞으로 게는 사 먹지 말거라. 우리도 저 문양이 나타나고부터 게를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았다.”

오래된 전기밥솥에 너무 많은 밥을 하니까, 밥솥 천정에 찍혀 있던 육각형의 다이아몬드 문양이 찍히다, 안 찍히다 한 것이 아니냐고 여쭈려다 말을 삼킨다. 시어머니는 봄이면 소쩍새처럼 솥이 작다고 울어야 하는 며느리 시절을 겪으신 분이다. 나는 늘 두 분을 가슴 졸이며 대했었다.

살이 익은 것도 아니고 안 익은 것도 아닌 게장 속의 게는 곱들락 물들어 간다. 덩치에 비해 너무도 작은 게의 눈에는 간장이 가득하다. 살아서 늘 “꽝”이었던 게의 6, 7번째 다리는 속이 아예 비었다. 살아가면서 허탕도 치라고 우리는 게의 텅 빈 다리를 집기도 하고, 때로는 알을 품지 않은 어미 게가 내 차례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불운을 운운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직 간장게장을 먹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늘에 유리병을 두고 5일쯤 지나면 간장 게장은 알맞게 숙성되어 있을 것이다. 느릿한 걸음으로 모래톱을 걷는 게처럼 간장게장 또한 느리게 간장 물이 들 것이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도 않게, 게는 묵묵히 자기 몫의 삶을 적시고 있으리라.

삶은 어쩌면 살아온 날만큼의 그만큼, 살아갈 기적도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리 힘든 인간관계라도 지나고 보면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는 것을, 간장게장을 먹을까 양념 꽃게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어릴 적에 했던 우동과 짜장의 갈등을 생각하며 혼자 웃을 때, 행복은 멀고 커다란 그 무엇이 아니라, 늘 가까이 있던 조그만 어떤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불우한 시대를 살았던 것이 아니라, 결국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자신과 불화를 겪는 중임을 알게 된다.

접시 위에 깻잎 4장을 클로버 잎 모양으로 놓는다.

노란 알이 가득한 게를 열어서 깻잎 위에 올린다. 등딱지에 붙어있던 것을 슬슬 긁어내고 더운밥을 넣어 비빈다. 흡족한 웃음이 얼굴에 퍼지면, 간장게장은 그때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날 것과 삭힘의 그 어디쯤에서 게는 촉수를 내리고 허물어지듯 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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