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광주시 서구 김상문

 

한자 숙어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배워서 알았지만 정확히 그 말에 대한 정감은 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게 되자 이제는 그 의미를 알아챘다.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는 느낌이다., 머리로 아는 지식은 깨달음이지만 가슴으로 아는 의미는 훨씬 절실하다 못해 떨린다. 그래서 수구초심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고향의 집이 눈앞에 곧잘 그려진다.  

우리 마을은 들 가운데 우둑 솟은 산봉우리 셋이 반원형으로 둘러있고  앞에는 너른 들판이 손바닥처럼 펼쳐져 있다. 평평한 곳에는 주요 기관 들이 들어앉았고, 양쪽 산등성이에는 조금씩 땅을 깎아 지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 집은  산꼭대기에 있어서  동네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마을의 산을 바라보며 자랐고 뒷산의 언덕배기를 놀이터로 삼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신작로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고샅길은 지붕과 지붕이 맛 닿을 정도로 좁은 사잇길이다. 애초에 길이 생기고 나서 지은 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찾아와 집을 지은 까닭에 앞집과 뒷집이 다랑이 논처럼 붙어있다. 어떤 집은 골목길이 막다른 곳이어서 그 집 마당이 동네길이 되었다.  “남의 집 마당을 골목길로 이용 하느냐.” 고 할 법도 한데 주인은 오히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수인사를 하면서 웃음으로 대했다.  담장을 두어야 하는 집에서는 그 담장위에 기둥을 올려 집을 지었다. 목재도 아끼고 마당도 넓히려는 심산이었다. 이를 보고 현대 건축가들의 평가는 이렇다. “지혜스런 우리 조상의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언젠가 민속마을로 지정된 99칸짜리의 부잣집 행랑채를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약간 여유가 있는 집안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대문이 아니고 싸릿문이었다.  싸릿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가끔 마당이 넓은 집은 담장보다는 생 울타리로 경계를 삼았다. 이웃 간의 소통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흙 담장은 비밀보장이 되지만 생 울타리나 싸릿문은 개방적이다. 그러기에 안방 문을 열어 놓고 가족들끼리 밥을 먹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의 일도 밖에서 바라 볼 수 있어서 그 집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할 것 없이 서로 자기 일처럼 도움도 주고 나눔도 받았다.

고샅길에서 만나는 영식이네 할아버지는 온 동네의 할아버지고, 영식이는 온 동네 사람들의 손자이고 아들이었다. 이처럼 고샅길은  온 동네가 이웃이고 형제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고샅길!  사람 사는 맛을 엿볼 수 있는 고샅길!, 그 길로 인해 온 동네가 한 가정처럼 다정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 고샅길이 그립다.         

요즘은 고샅길이 없어지고 열쇠 없이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게 되었다.  담장도 예쁘게 장식한 벽돌로 담을 쌓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면 섬뜩하게 깨진 유리로 밖아 놓았다. 얼마나 이웃사람이 두려우면 그렇게 담을 쌓을까? 뿐만 아니다. 아예 아파트는 고샅길을 없애고 벽으로 이웃 간의 소통을 없애버렸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서로 간에 인사도 없다. 언젠가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은지가 석 달이 넘도록 아무도 몰랐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소름이 끼쳤다. 고샅길이 없는 아파트는 가족만 살고 있지 이웃은 없다. 이웃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섬에서 혼자사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적막하고 고적하다. 예전의 우리 마을의 구불구불한 고샅길, 생 울타리길이나 사립문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우리 집으로 가는 자드락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시꺼먼 웅장한 바위돌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바위를 돌아가는 후밋길은 돌너덜길이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오르기 쉽게 돌계단이 놓여있다. 이 계단을 동네사람들은 별 보러가는 계단이라고 말했다. 높은 곳에 올라 별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다보니 별이 보인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헐근거리는 숨을 참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마을 전망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저 멀리 너른 들판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펼쳐 져 있다. 가슴이 확 터질 듯 시원하다.  다리가 후둘 거리고 팍팍하지만  푸른 하늘을 보니 높은 곳에 올라 온 보람이 있다. 

차분하게 한 숨을 쉬고 나서 고개를 돌려 보면 대나무 숲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고샅길은 푸서리 길이어서 뱀이 나올까 무섭기도 하지만 훤한 대 낮인데도 어두컴컴해서 나에겐 공포의 길이다. 대나무와 대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는 동화책에서 읽은 귀신소리처럼 사람마음을 두렵게 한다. 혼자 걷기에는 무서운 공포의 길이다. 도란도란 거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두려움에서 해방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우리 집 강아지 복실이를 부른다. 대나무밭에서 지르는 소리는 반향이 없어 소리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 배를 부여잡고 “복실아”를 몇 번이나 불러본다. 용케 복실이는 내 목소리를 알아채고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달려온다. 개와 함께 걸으면 마음도 든든하다. 강아지지만 나에게는 호위무사였다.

높은 집에 살면 산위에서 해가 뜨고 산 아래로 해가진다. 사계의 변화를 먼저 알게 된다. 봄은 색깔로 알려준다. 푸르스름한 색깔로 온천지에 뿌려지면 봄이 왔음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다. 앞 들판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뺨에 스쳐도 봄은 봄이다. 봄은 이렇듯 색깔로, 그리고 바람으로 다가온다. 여름이 되면 온통 산하를 짙푸른 색깔로 채색하면서 사람들의 옷을 벗어재낀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누런 물감으로 들판을 칠하거나 산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인다. 그뿐 아니다. 주렁주렁 열매로 사람들의 배를 채워준다. 겨울은 하얀 양탄자를 그대로 펼쳐 놓으니 강물은 없어지고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만이 높고 낮음을 알려준다. 자연은  우리 산하를 그리는 수채화가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화가가 그려주는 자연의 변화를 생생하게 몸과 마음으로 감상하면서 행복감에 늘 젖어있다. 행복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는 과실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는가 보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사는 게 좋다고 하더니 이제는 교통이 불편해도 산이나 바닷가에 있는 리조트나 호텔을 찾아 가고 싶다. 언젠가 동해안의 해뜨는 모습을 보려고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정동진으로 가서 새벽녘에 올라오는 장엄한 해 뜨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 서해안 태안반도를 찾아가서 노르스름하게 물들이는 저녁놀을 보고 탄성했던 기억도 있다. 

인간은 풍경적인 존재, 눈에 익은 산과 들 그 속에서 풍경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간다. 되돌아보니 ‘내가 살았던 언덕배기 그 집은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집이었다.  정동진을 가지 않더라도, 서해안을 가보지 않더라도 장엄한 해를 날마다 볼 수 있고 사계의 변화를 그려주는 수채화를 감상하면서 행복감에 젖을 수가 있다. 

집 앞에 바라보이는 산이 고향집이고 고향집은 바로 산이었다. 앞산은 가족 친척연인처럼 나와함께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언덕배기집은 나를 낳아준 모태(母胎)이기에 귀소본능이 살아있다.  나이 탓일까? 향수일까? 아니면 수구초심일까 ?  언젠가 내 고향에 돌아가 내 삶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싶다. 언덕배기집에서 찌든 삶을 버리고 싶다.  어릴 적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렸던 언덕배기 집 ㅡ 복실아 라고 부르면 꼬리치고 달려오는 ㅡ이 유난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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