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경기도 안산시 진예온

 

“엄마, 사랑이 뭘까.”

나란히 누운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내 질문에 선명한 답을 주지 않았다. 몇 어절이고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를 듣다 엄마도 잘 모르겠네, 라거나 너무 어렵다, 하는 애매한 말만 덧붙였을 뿐이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런 엄마가 조금은 답답했다. 딱 떨어지게 내는 답이 그렇게나 어려울까. 독촉하는 듯한 침묵에도 엄마는 조용히 숨을 내쉬다가 그저 말했다. “그러게.” 나름의 답을 준 엄마는 금세 잠에 들었다. 나른한 숨소리 곁에서도 잠 못 이루는 딸을 두고.

합격한 대학은 서울에 있었다. 그저 그런 이름의 학교에서 그저 그렇게 지냈다. 요새 그렇게 취업이 잘 된다던 미디어 관련 학과는 좋아하는 콘텐츠가 같은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남들은 술을 마시면 시답잖은 가십거리 이야기를 한다는데 우리는 대신 영화를 보고 아직은 미숙한 평론을 여기저기 뿌려댔다. 그중 사랑은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흔한 영화에는 로맨스가 꼭 끼어 있었고, 거기서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그 장면을 보고 나면 논쟁은 이어졌다.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그럴 수 있는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주제에 목청 높여 네가 옳니 그르니 떠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누구 하나가 물으면, 우리는 조용해졌다.

“그래서 사랑이 뭔데?”

사랑이라니. 버릇처럼 뒤적거리던 사전에도 ‘사랑은 무언가를 몹시 귀하게 아끼는 것’ 정도의 정의만이 적혀 있었다. 그 문장 하나에 또 불이 붙어 제멋대로 떠든다. 몹시 귀하면 다 사랑이게, 목숨이 더 귀하지. 그런 목소리가 터지면 옆에서는 또 정말 사랑하면 그럴 수 있다고 응수한다. 술김에 와하하 터지는 웃음 속에서 결론지었다. 사랑이란 전부 허상이다. 전부 다 줄 낌새로 맹렬히 고백하는 미디어 속 사랑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

술자리에서 돌아오면 참 공허했다. 축 처진 몸을 기숙사 침대에 던져 놓고 천장을 빤히 바라보면 분해된 단어들이 맴돈다. 사랑, 사랑, 사아,랑. 시옷이니 리을이니 하는 초성들을 응시하다가 왈칵 베개에 얼굴을 묻는 날도 잦았다. 죽니 사니 하는 미디어의 사랑이 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무언가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큼은 사랑이겠지. 목숨에 비견할 바는 못 돼도 그만큼 아껴 주는 게 사랑이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면 자꾸만 되묻게 됐다. 그럼 나는, 사랑받고 있나. 나를 그만큼 아끼는 사람이 있나. 문득 사랑해, 하고 뱉었다. 비좁다고 여기던 기숙사도 답변이 돌아올 만큼 좁지는 않았다. 그 애매한 공간의 무게가 스무살 청춘을 외롭게 짓누르면, 그럼, 또 왈칵. 급하게 눈물을 들이켠다.

떨어져 사는 삶을 버틸 수 있기까지는 그닥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 안에도 다정은 뭉쳐져 있지. 나는 빈 문장에서 다정을 줍는 법을 배웠다. 그걸 기워 사랑인 척 나를 도닥이는 방법을 알았다. 밥은 먹었냐는 동기의 질문에 하루를 보내고 제 일 해내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한 마디에 이틀을 넘겼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그토록 간절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쓴 일기를 읽었다. 나는 꼭 여기에 오고 싶었지, 여기에 오려고 그토록 아등바등 살았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외로움은 적응할 수 없대도 간신히 넘길 힘은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기숙사에 돌아온 어느 저녁,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배고파.”

엄마 안녕, 잘 지내? 하는 인사도 없었다. 무작정 그렇게 이야기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술이고 안주고 잔뜩 먹어댄 주제에 아무거나 먹고 싶다고 잔뜩 외쳐댔다. 늘 무던한 우리 엄마는 거기 대고 그래, 했다. 그게 통화의 전부였다.

다음날 기숙사에는 내 이름으로 상자가 세 개나 배달됐다. 꽁꽁 둘러싸인 테이프를 간신히 떼어내며 자꾸 헛웃음이 나더라. 누가 이렇게 많이 보내달라고 했냐고, 그냥 배고프다고만 했지. 포장은 왜 이렇게 단단해, 종강할 때까지 외식은커녕 이것만 먹는 거 아니야? 뭐 이렇게 많이, 뭘, 진짜, 무슨…. 문장이 뚝뚝 끊겼다. 생애 그렇게 단단한 테이프는 처음 봤다. 어찌나 단단하던지 눈물이 다 나더라. 정말 테이프 때문에. 나는 봄이 다 지나고 한여름이 불쑥 다가올 때까지, 잔뜩 포장한 짐바구니와 함께 집에 돌아갈 때까지 몇 번이고 그 테이프를 뜯었다.

언젠가 다시 집에 돌아간다면, 가서 엄마에게 농담조로 그날 택배 아니었으면 밥 먹으러 집까지 왔을걸, 하고 말한다면 엄마는 또 아무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대답하겠지. 내가 사랑이 뭐냐고 묻던 그 순간처럼 “그러게”, 하고. 그게 엄마의 전부일지라도 더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는다. 사랑이 뭐게, 하는 바보같은 질문도 하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 집 같은 기숙사에서 익숙하게 외로움을 버티고 타인의 다정을 주워 기운다. 다 자란 척 목숨과 치환되곤 하는 미디어 속 사랑을 비평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던져지면 입을 꾹 다문다. 여전히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문득 던져 둔 핸드폰 액정에 익숙한 열한 자리 숫자가 떠오를 때, 얼굴 없는 기계 너머에서 ‘배 안 고파?’ 하는 목소리가 넘어올 때, 나는 정의도 모호한 사랑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시킨 적도 없는 택배들을 가슴에 한가득 끌어안으면 온기도 없는 종이 사이에서 느리게 피어오르는 심장 박동. 어쩌면 엄마의 사랑은 늘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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