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70, 80년대의 청춘은 ‘워크맨’과 ‘마이마이’를 끼고 살았다. 디지털 음원이란 게 없던 시절, 소니 워크맨과 삼성전자의 마이마이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최고의 호사품이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은 노래들. 그중에 이 노래가 있었다. 아마도 짝사랑에 잠 못 이루던 때였으리라.

최근에 개봉한 한국 영화 ‘밀수’에서 이 노래를 조우했다. 영화에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최헌, 이은하, 나미, 김추자 등의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소환됐는데, 이 노래가 깔리는 순간 가슴이 쿵탁거렸다.

이렇게 단아하고 시적인 노래 제목이 어디 또 있을까. 사랑을 갈망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을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았다고 고급하게 표현하다니.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인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은 정태춘에 버금가는 대중가요계의 시인이라 칭할 만하다.

소월은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떠나시라며, 나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이별의 체념과 극복을 노래했지만 이 노래는 반대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아놓았으니 사뿐히 밟으며 와 달라고 구애한다. 같은 ‘사뿐히’이지만 진달래꽃은 떠나는 뒷모습이고 주단은 영접이다.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레드카펫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길목에 서서

예쁜 촛불로 그댈 맞으리

향그러운 꽃길로 가면

나는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으리

아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

사뿐히 밟으며 와주오

그대는 아는가 이 마음(반복)

(1978년, 작사·작곡 김창완, 노래 산울림)

 

주단을 깔고 촛불을 켰다. 그대는 향그러운 꽃길을 걸어 내게 온다. 나는 순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대 마음에 날아가 앉는다. 마치 결혼식에서 신부를 맞는 풍경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순간 나의 모든 말이 노래요, 시다. 주단을 깔아놓은 내 마음을 그대는 아는가, 라고 노래는 반복한다. 어쩌면 그대는 영원히 오지 않는 마음속 연인이요,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노래는 꿈일 수도 있다. 그 환상을 더욱 빛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건 화려한 옷감 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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