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부천시 상원초등학교 5학년 전하령

 

내 신발장에는 오래된 운동화 한 켤레가 있다. 그 보라색 운동화는 낡고 흙이 많이 묻어있지만, 내가 편하게 자주 신는 신발 중 하나이다. 처음 운동화를 봤을 때는 깨끗한 유리컵처럼 반짝반짝 윤기가 났지만 나와 하루하루를 같이 보내다보니 어느새 물감을 바른 듯 앞코가 갈색으로 물들었다. 신발끈도 더러워져 까만색이 되었다.

그래도 내 운동화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추억들이 꼭꼭 담겨져 있다. 이 운동화만 신으면 몸이 가볍고 기분이 좋다. 내가 가족들과 멀리 여행을 떠났을 때 내 발에는 보라색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도, 시골에 갔을 때도 내 운동화는 언제나 나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내 운동화는 색이 예쁘고 내 발을 빠지지 않게 꼭 잡아준다.

여전히 학교에 가기 전, 신발장에서는 고민할 필요 없이 항상 그 운동화로 손이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운동할 때마다, 산책할 때마다 내 곁에서 힘내라고 속삭여주는 것만 같다. 어느새 내 발모양대로 움푹 파이기도 했다. 이것을 본 엄마는 나 몰래 내 운동화를 빨았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다행이었다. 하루는 신발 정리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좋다고 말했다가 큰일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내 보라색 운동화가 낡았다고 생각해 버리려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학교를 가려고 열어본 신발장에 운동화가 없자 나는 엄마에게 곧장 달려갔다. 다행히도 엄마는 버릴 신발들을 비닐봉지 안에 넣어 베란다에 보관해두고 있었고, 엄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나는 보라색 운동화를 꺼내 다시 신발장 앞으로 가져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나는 울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할머니 댁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 날도 나는 내 보라색 운동화를 신고 갔다. 할머니 댁에서 사촌 동생, 동생과 공원으로 갔다. 크고 넓은 계단에 셋이 줄지어서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조심 축구공 넘기기 놀이를 했다. 아슬아슬 좁은 계단 틈에서 하는 놀이는 우리가 거의 만날 때마다 하는 놀이였다. 이 놀이를 하려면 공을 차는 세기도 잘 맞춰야하고 특히 합이 잘 맞아야 한다. 공을 발로 뻥뻥 차다보면 어느새 공이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있다. 그런데 하필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진흙이 많이 묻었다. 아끼는 운동화인데 때가 타 속상했다. 내가 공놀이로 땀을 빼서 내 운동화도 많이 힘들었는지 발에 땀이 찼다.

나는 들어와 얼른 세수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잠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할머니 댁 소파에 몸을 던졌다. 살짝 고개 돌려 신발장을 봤는데 운동화가 금세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있었다. 깔끔하게 땀을 닦아내 개운해 보이는 내 얼굴과 달리 꼬질꼬질해 보이는 운동화는 너무 비교가 되었다. 내가 운동화라면 시원한 아이스크림에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는 내가 괘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온종일 내가 다치지 않게 도와주었는데 주인이라는 사람은 운동화를 냄새도 많이 나고 더운 현관문 바로 앞에 놓아두었으니 말이다. 내가 익숙함 때문에 너무 관심을 주지 않은 것 같아 미안했다.

또, 어느 토요일에 이모와 사촌 동생을 만나 연극을 보러 서울에 간 적도 있었다. 그 때도 보라색 운동화와 같이 다녔다. 내가 예전에 조금 읽었던 책을 표현한 연극을 보았는데 내가 몰랐던 뒷내용을 볼 수 있었다. 운동화와 슬픈 장면이 나올 때는 함께 눈물을 흘리고, 웃긴 장면이 나올 때는 함께 웃으며 재미있게 연극을 보았다. 연극이 끝난 뒤에는 공을 사 풀밭에서 놀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상쾌한 날씨에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잠깐 벤치에 앉았는데 그 때 문득 내려다본 운동화는 살짝 지쳐 보였지만 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내 운동화도 그 시간들을 좋은 추억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 달력은 운동화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장 한 장 넘겨져 지금까지 왔다. 나는 가끔 내 보라색 운동화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되돌려 보며 깊은 애정을 느끼곤 한다. 마치 친구처럼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이에 우리의 우정이 싹을 틔웠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나는 사람 외에도 물건과의 우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함께 하고 옆에 있으면 웃음이 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들어도 언제나, 나를 지켜준 내 보라색 운동화에게 고맙고 앞으로도 쭉 같이 다니자고, 또 내가 더 조심히 신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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