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안산시 광덕고등학교 3학년 류소윤

 

나는 극장을 참 좋아한다. 음료나 팝콘을 사 들고, 어두운 극장 통로를 지나갈 때 풍기는 쿰쿰한 냄새가 좋다. 어두운 계단을 조그마한 빛에 의존해 올라가면 몇몇 빈자리를 제외하고 이미 좌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극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극장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웅성거림은 훅 사라지고 고요한 긴장감이 주변에 흐른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메아리칠까 고이는 침을 머금고 있는 그 짧은 순간은 심장 소리가 울려 나를 메운다. 새하얀 스크린의 빛이 나의 두 눈을 감싸 안고 상영이 시작될 때, 영화는 나를 전혀 다른, 혹은 어딘가 닮은 삶 속으로 이끌어 간다.

잘 만든 영화는 여러 감정을 정해진 선 없이 느끼게 한다. 그런 영화를 통해 웃고 울면 마치 내가 주인공의 인생을 산 것처럼 진이 다 빠져버린다. 그 상태로 엔딩크레딧을 보고 멍하니 있노라면 이상하게도 울적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의 결말처럼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도전하며 싸울 수 있을까. 정열적인 사랑의 한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까. 누군가 내 인생을 극장에서 보면 아무런 감흥 없는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할까 겁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인 3학년을 보내는 19살인 나의 인생 고민은 어른들에게는 그저 어린애의 투정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소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요샛말로 주민등록증에 잉크도 안 마른 나는 한창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그 길에 맞춰 학교생활을 그려나간다. 생활기록부라는 3년간의 그림은 대학교 입학을 위한 장치로 공부만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진로는 천천히 정해도 된다지만 주변 친구들은 벌써 자신의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걸 보고 있자면 나 홀로 제자리인 것 같이 느껴져 주저앉고 싶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겼다.’, ‘너에겐 예술의 재능이 있다.’, ‘쟤가 전교 1등이라며?’ 등등.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거나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재능이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평범한 나에겐 염원의 대상이자 도피처였다. 재능도, 흥미도, 고달픈 가정사나 영웅적인 무엇도 없이 무난했던 나에게는 특별한 계기로 인해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이렇게 어영부영 진학하고 어영부영 졸업하고 또다시 어영부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뒤를 돌아봤을 때 정말 아무것도 없이 흐려진 내 발자국만이 남는다면, 관객들은 하품하며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에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 중간고사가 끝나 방 정리를 하던 날이었다.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친구와 나눴던 필담이 적힌 종이나 낙서 같은 것들을 모아놓았는데 옛 물건들을 보다 보니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감성에 젖어 어렸을 적 일기장을 펼쳐 눈으로 훑기 시작하는 내가 있었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맛있었다.’, ‘언니가 만든 작은 서랍을 부숴버렸다, 미안했다.’ 짧은 한 두 줄 자리 글들이 삐뚤빼뚤 못난 글씨로 이어져 있었다. 꾸밈이나 상투적인 말 없이 있는 그대로 쓰인 글은 특별하지도 않고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죽 읽어 내려가기 좋았다. 부모님과 언니에게 일기장을 보여주니 내게는 너무 어려 흐릿한 기억일지라도 웃으며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얼 싫어했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 술술 그날의 기억들을 꺼내는 우리 가족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투박한 글이지만 나의 일기는 우리 가족의 기억을 끄집어냈으며 그날의 감정을 꺼내고 웃음 짓게 했다. 글을 잘 썼냐 못 썼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화라도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으며 아무리 못 만든 영화라도 누군가에겐 추억이 될 수 있다. 나의 인생을 누군가 재미없다 해도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들이 있다면 재밌는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영화의 전개는 중요하지 않다. 그 영화를 같이 봐주는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날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 티격태격하면서도 나를 보살펴준 언니와 오빠, 같이 장난치고 놀던 친구들과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시는 선생님들, 힘이 되어주는 연인의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나의 인생을 같이 쌓아 올려준 주변인들을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그들은 나를 보며 미소 지어줄 것이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엔 이르다.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아주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 내 인생이 참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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