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부문)
용인시 서천고등학교 3학년 김민수

 

짜가운 물줄기가 내 뺨을 타고 내려온다. 턱에 대롱대롱 맺힌 땀방울이 이내 가파른 산길 아래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땀줄기가 이 산을 적셨을까? 나는 등산스틱을 쥔 손으로 이마를 닦아내며 골똘히 생각했다. 녹음을 눈앞에 둘 때면 항상 잡다한 상념들이 내 발밑을 붙잡고 늘어진다. 가만히 서서 매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옆에 있는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에 그리 잠겨있냐고 너스레 떨며 말하는 소리까지. 귀에 들려오는 모든 것이 행복했고, 내심 이런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나도 좋았다. 일주일에 꼭 한 번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나가는 그런 일상이. 내게는 유일무이한 행복이었다.

하루는 학교 책상에 몸을 쭉 늘어뜨린 채 수업을 듣던 날이었다. 귓구멍에 대못처럼 박히는 영어 선생님의 수업이 자연스레 잠을 불렀다. 곧장 뛰쳐나가 각양각색의 꽃들을 감상하고 바짝 마른 흙을 밟으며 걷고 싶었다. 이런 수업은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쇠귀에 경 읽기일 뿐. 가만히 앉아있기가 어찌나 싫었던지, 쉬는 시간 매점에 빵을 사러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는 순간조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개운하게 느껴졌다. 기지개를 켜자 매점에 걸린 디지털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일정한 속도로 깜빡이는 빛은 날짜가 목요일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목요일···. 아, 오늘 아버지랑 등산을 가는 날이구나! 잿빛으로 가득 찼던 내 얼굴에는 갑작스럽게 화색이 돌았다. 산을 오를 생각에 싱글벙글해진 나는 빵 봉지를 까서 단팥빵을 입 안에 욱여넣고, 수업 시간에는 다리를 떨며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다. 딩동댕동. 천고의 시간처럼 기나긴 기다림 끝에,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책가방을 대충 어깨에 걸치곤 집으로 향했다. 그때 바닥에서 떨어진 신발 밑창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향할 줄은 알고 있었을까.

쾅. 대포알이 발포되는 소리처럼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한 번 붕 뜨고, 아스팔트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그로부터 내 기억의 끈은 끊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을 겨우 떠보니 입원실이었다. 옆에선 어머니가 얼굴을 가린 채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깨어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분명 등산복을 입어야 할 몸에 무미건조한 병원복이 둘러싸여 있고, 토시를 껴야 할 팔에 링거 바늘이 꽂혀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부정할 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두 다리에 이상하리만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통 아래에서 축 늘어졌을 뿐, 무릎을 굽힐 수도, 발목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에서 직감했다. 내 다리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더 이상 등산이라는 일상을 어디에서나 꿈꿀 수 없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고, 며칠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우울한 생활을 보냈다. 벤치 대신 휠체어에 앉는 꼴이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은 채. 다리 두 짝을 잃은 내 운명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전과 달리, 아무리 오랫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도 등산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등산이라는 단어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내 입에서 쓰게 느껴졌다. 아주 고통스러울 정도로.

병원에선 지체 장애 1급 2호로 분류되는‘관절 장애’라는 꼬리표를 내게 달아주었다. 최근 낮에는 재활 치료를 하는 등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살기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찾아갔지만, 여전히 고독하게 느껴지는 밤에는 병실에 비치된 TV를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운동복 광고에 나오는 배우들이 산책로를 걸으면 괜스레 채널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푹푹 나왔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무거운 한숨 대신 커다란 심호흡을 내쉬었을 텐데. 고등학생 때 끊겨버린 내 발자국과는 달리 세상 모든 사람이 여기저기 발자취를 남기고 다니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리모컨의 채널 이동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 나는 무언가를 보곤 손가락을 멈췄다. 뉴스 채널이었다.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세간의 소식을 전하는 평범한 그런 뉴스 채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장애 없는 등산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교통 약자 차원에서의 관점을 가지자는 지자체의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나는 해당 기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나운서의 말을 끝으로 보여주는 화면에는 화창한 숲속에서 휠체어를 탄 이들이 완만한 경사를 스스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주무시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들, 왜 울고 있어? 부스스 눈을 뜨신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흐느끼고 있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절박함에.

나는 TV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께 한 마디를 전한다.

“아버지, 저랑 같이 등산 가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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