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삼산고 2학년 김현진

“요즘 같은 시대에 여행은 사치다.” 

엄마는 여행 팸플릿을 보고 있는 날 보고 말했다. 여행은 사치라고. 엄마의 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우리 집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부모님의 발버둥으로 세워졌다. 엄마는 따뜻한 집안에서 쉬기보다는 추운 밖에서 일하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사업이 망하고 쭉 내리막길을 걸어온 엄마는 내려가지 않으려 일부로 저녁 마감 시간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집의 물건은 점점 줄어서 냉장고나 식탁, 매트리스만 남아있었다. 3명이 들어가면 꽉 차보이는 그런 집조차도,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불은 항상 꺼져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뜸 여행을 가겠다니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집안이 너무 어두웠다. 부단한 노력 끝에 구한 집도 맞지만,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맞이해줄 엄마도, 다녀왔다는 인사를 받아줄 아빠도.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이리저리 구경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그나마 채워지는 기분이 느껴져서. 근처도 이런데, 여행은 어떨까. 뭔지 모를 공허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방학이 되면 뭐라 할 새도 없이 떠날 수 있게 돈을 모으고 방 한편에 여행 가방을 싸두기도 했다. 그런 상상도 잠시 현실이 덮쳐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집에 와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해는커녕 달이 떠 있을 때조차 집에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두 눈을 마주친 순간, 생각할 새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회사는..?“

엄마는 계약직 계약이 만료되었다며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걱정되긴 했지만, 엄마는 항상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일을 구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보다는 엄마의 상태가 더 걱정되었다. 머리 군데군데 새치가 나 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또 종이를 구겼다가 핀 듯이 만면에 꼬깃꼬깃한 주름이 가득했다. 조금 있으면 쓰러질듯한 얼굴임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으니 휴식을 위해 하늘이 내린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며 이김에 하고 싶은 것도 하고 푹 쉬라고 이야기했다.

“맞다, 이렇게 된 김에 같이 여행이라도 갈까?“

“지금 무슨 여행 타령이야. 안 그래도 일자리 찾느라 바쁘겠구먼.”

“아니 그래도…”

몇 번이나 말을 해봤지만,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이 대화가 되지 않았다. 계속 다시 의견을 말해봤지만, 엄마는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예전에 챙겨둔 여행 가방이었다. 옷가지부터 세안 도구, 상비약까지 따로 검색해서 준비해둔 터라 따로 챙길 것이 더 없었다. 저금해 놨던 돈도 해외는 아니지만, 국내 여행비로는 충분했다. 나는 바로 가방을 집어 들어 버스를 예매하고 무작정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휴대폰 전원은 끈 채로 버스에 올라타 잠을 청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후에 일은 순조로웠다. 길거리에서 어묵과 씨앗호떡을 사 들고 걷다가 가보고 싶었던 동백섬이 생각났다. 섬에 도착하자 동백꽃들이 나를 반겼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휴대폰을 켤 수는 없으니 눈에 담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선 바다를 눈에 더 잘 담기 위해서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너머 전경 속 반복되는 바다의 물결 소리는 사색 속으로 잠기게 만들었다. 수평선까지 펼쳐진 푸른 도화지에 보인 건 엄마의 얼굴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결처럼 엄마의 인생은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엄마의 말처럼 여행은 정말 사치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여행에 들어가는 돈은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짐을 싸고 나온 순간부터 돌이켜보았다. 작은 새 한 마리, 흘러가는 뭉게구름 하나하나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 내가 거침없는 마음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날갯짓하는 철새들과 바다, 태양, 모래섬이 어우러져 만든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다시는 이 순간, 가슴속에 담지 못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오고 하늘을 바라보니 햇볕이 사람들을 내리쬐고 있었다. 오늘은 돌아가야 하지만, 아쉬움에 발걸음이 주변을 돌았다. 

계단을 내려가며 나무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청설모가 머리를 내밀었다. 귀여운 모습에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휴대폰이 있는 가방에 손을 대려다 말았다. 그냥 눈으로만 보기로 하자고 생각하고 계속 청설모를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다람쥐인 줄 알았는데 잘 살펴보니 크기가 다람쥐보다 훨씬 크고 털 색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회색에 배 쪽은 흰색이었다. 나무 열매를 먹고 있는 청설모가 귀엽기도 했고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해서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니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의 머리는 멀리서 보면 흰색과 검정이 섞여 회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뒤에 수북이 놓인 나무 열매가 뭐든지 조금씩 쓰고 모으는 엄마와 제일 닮아있었다.

이제서야 생각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걱정이 몰려왔다. 급작스러운 여행인 만큼, 나보다는 엄마가 더 놀랐을 것이다. 휴대폰을 매만지며 전원을 켜봤다. 부재중과 문자가 와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엄마는 내가 집에 오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전화는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문자를 읽어보니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디 갔는지는 모르지만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면서 걱정되니까 빨리 들어오라는 장문의 문자가 와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자판을 두드리려는 손가락이 주춤했지만 그 속에서도 여행의 가치가 가진 중요함은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다.

청설모 뒤로 펼쳐진 바다 그 사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고 선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눈가에 보이는 주름의 깊이는 세월의 파고를 보여줬지만 바다가 비친 푸른 눈동자만큼은 여유를 담아내는 듯 보였다. 지금은 현실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엄마지만, 언젠가는 저런 잔잔함에 푹 빠져들어 봤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붙이지 않은 채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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