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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민 본보 편집국장

세월호가 침몰한 지 9년이 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세월호의 가슴 아린 느낌도 이제 무뎌졌다. 그리고 세월호 관련 뉴스만 나와도 눈가를 적시며 고이던 눈물도 사라졌다. 하얀색 국화나 노란색 리본만 봐도 울컥했던 마음은 추모의 향내가 진동하는 기억교실을 찾아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아픔을 간직한 이름 ‘세월호’는 야속하게도 그 이름이 가진 힘으로 인해 잊혀져 갔다. 세월호를 잊게 한 9년의 세월. 사람들은 저마다, 이젠 더이상 그 이름을 부르기 힘들어서, 기억해 내면서 살기 안타까워서, 침몰한 배를 붙들고 절망만 하기 힘들어서 잊으려 애쓴다.

그러다가 얼마전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 때 다시 한 번 우리 사회로 소환됐던 세월호. 우리 공동체에 크고 작은 안전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마치 아픈 역사의 표본인 양 떠올려지는 이름, 세월호다.

살아 있었다면 26살이 됐을 아이들은 이제 한 장의 사진으로, 누군가의 스케치로, 교육부가 만든 ‘416 기억노트’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천대와 반대의 대상이었던 세월호. 누군가에겐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아픔을 남겼지만, 누군가에겐 어서 정리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그 세월호. 누군가는 안산에 세월호 기억교실이 있어 좋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안산이 왜 세월호를 떠안아야 하느냐고 따진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꿈속에서 만나며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을 추모할 작은 동산마저 납골당이라 비유하며 혐오하는 이들도 있다. 참사 후 3-4년쯤 됐을 때부터 ‘이젠 그만하라’고 말하던 이들은 9주기 기억식이 달갑지 않을테고 해상 교통사고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야 하냐고 비난하던 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망각이 손쉬울 때도 있고, 모든 걸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발걸음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 과거의 일들을 붙들고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해당 과거가 선사하는 교훈적 의미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해당 과거가 전적으로 실패한 역사일 때만 그렇다. 그 역사에 아픔이 있고 아련한 눈물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과거와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실패와 좌절의 감정은 그 사건의 원인이 밝혀지고 얻을 교훈을 얻어내고 나면 하루라도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해야 맞다. 그러나 세월호는 총체적 실패이기는 해도 그 안에 안타까운 생명의 희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영혼도 소중한데 무려 300명이 넘는 육신을 떠나보낸 사건에 망각의 은혜를 들이대고 강조해선 곤란하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가 숨 쉬는 내내 기억해 줘야 한다. 그들의 아픔이 현장에서 느껴지지 않고 아련해 가더라도 의지적으로 그들을, 그리고 세월호라는 이름을 기억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의 의무다.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그 어린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했기에 그들을 우리의 기억에서 지우면 안되는 것이다.

참사 9주기에 우리 사회가 여러 곳에서 시대적 아픔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어 일부 국민들은 속상하다. 그저 기억해 달라는 것이고 라는 이름을 들이대며 무언가를 빼앗아가려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이름이 싫다. 일년 내내 , 하면서 기억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배가 가라앉았던 바로 그날, 4월 16일이 되면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을 잠시 놓고 9년 전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추모하자는 이야기다. 정부 고위급 인사가 누가 오는지, 안산시장은 오는지, 이런 것들 가지고 계산기 두드리지 말고 잠시 기억해 주기만 하면 되는데 시민들도, 우리 국민들도, 정치권도 추모에 정치적, 사회적 손익 개념까지 들이대며 진심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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