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 법무법인 평정 대표변호사

두터운 법전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과 소송자료 뭉치가 가득 쌓인 책상 뒤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사로 존경받는 조지훈 선생의 '호상비문(虎像碑文)' 탁본이 걸려있다.

‘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 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나니 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이는 조지훈 선생이 고려대학교의 상징인 호랑이를 돌로 만든 조각상 받침대 뒤편에 새긴 글이다.

“끈기와 집념을 필요로 하는 분쟁해결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문구”라며 “법조인으로 소명을 갖고 작은 사건이라도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다보면 빛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꿈꿔왔던 것처럼 어려움에 당면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따뜻한 법조인이 되고싶다”고 다짐하는 법무법인 평정 이병길 대표변호사를 만나봤다.

 

Q. 안산타임스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옳고 그름을 알아보는 것에 관심이 컸다. 막연하게나마 ‘정의’를 우선순위에 두고, ‘구현’에 일조하는 직업을 꿈꿨다.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는 줄곧 ‘법조인’이라 적었다. 그렇게 고려대학교 법학과로 진학했다. 공군장교로 복무하고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35기로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쳤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로스쿨 연수를 다녀와 본격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인근에 위치한 법무법인 평정 대표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참고로 평정(平正)은 ‘고르게 바르다’라는 한자의 뜻을 가진 동시에 ‘평정한다’는 힘차고 강인한 어감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중의적인 어감이 들어있어 마음에 든다.

 

Q. 안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는지.

2006년 무렵 선배의 권유로 안산에 터를 잡게됐다. 당시 한창 발전하는 도시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봤다.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동시에 2007년부터는 안산시 ‘법률자문관’으로도 임용되어 10여년간 다양한 현안에 대해 안산시 공무원들의 자문을 담당했다. 자치단체 중 전국최초로 법률자문관을 시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법무법인과 법률자문관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행정 분야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를 쌓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행정에는 개별법이 산재해 있다보니 쉽지 않은 분야로 꼽힌다. 애매한 법해석에 대해 안산시 발전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며 보람도 많이 느꼈다. 덕분에 공로패를 받은 좋은 추억이 있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민사조정위원,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형사조정위원을 비롯해 안산시 보육정책 심의위원회, 안산시 아동학대예방위원회 위원, 안산 단원경찰서와 상록경찰서 등 각 경찰서 징계위원, 안산세무서 국세심사위원회 위원, 청소년수련관 이사, 경기테크노파크 감사 등 지역에서 다각도로 활동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안산지회 총무로도 활동했다.

 

Q. 기억에 남는 소송사례가 있다면.

안산시 ‘법률자문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안산시가 광장 조성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공기업과의 마찰이 벌어졌다. 광장을 만들면서 지장물을 옮겨야했는데,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두고 쟁점이 됐다. 1심에서는 안산시가 이자를 포함해 15억 8000만원 가량의 배상을 떠맡게 됐다.

결과를 뒤집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담당 관계자들로부터 항소심을 맡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변호사이기 전에, 안산 시민의 한사람으로 책임감이 들었다. 바쁜 하루일과 속에서도 틈만 나면 법리를 고민하고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파악해봤다. 그렇게 도로법 제76조 제1항의 ‘일부 부담’부분을 찾아내게 됐다. 그 결과 일부 승소해서 9억원 가량의 환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살고있는 도시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뿌듯한 성과였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안산시 ‘법률자문관’으로 1000건이 넘는 자문을 해 왔지만 법률자문관 재직 시 안산시를 대리해서 재판을 직접 진행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Q.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안산지방법원 승격 왜 필요한지.

안산지방법원으로의 승격은 ‘도시의 급’을 격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더불어 안산하면 떠올리는 부정적 측면의 이미지에서도 탈피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안이 정치, 행정, 지역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 계류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2016년 ‘안산 지방법원승격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2018년에는 ‘안산지방법원 승격 범시민 공동추진위원회 출범식 및 시민결의대회’도 개최됐다. 또한 2020년에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안산지방법원 승격을 골자로 한 대표 발의도 나왔다. 다만 흐름이 지속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 상황이 없는 실정이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경우 안산시를 비롯해 시흥시, 광명시를 관할하며 인구 150여만명을 아우르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이유로 지방법원 승격에서 안산이 유리한 점은 있으나, 다른 후보군 지역들이 오히려 한발 앞서 추진중인 상황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번 지정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집값, 주차, 교통 등 당장의 이익이 되는 현안 해결도 안산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나, 안산지방법원 승격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절실하다.

 

Q. 현재 관심 갖고 있는 안산의 이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안산지방법원 승격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주차난 해결도 시급한 현안이다. 안산시 등록 차량은 2012년 10월 26만2천859대에서, 지난해 10월 기준 32만1천858대로 5만8천999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10년 사이 22.4%가량 증가한 셈이다. 주차전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심각하다. 그렇다보니 불법주차로 인해 시민안전이 위협받는 사례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해 연말 안산시가 도심 주차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2400억원 규모를 투입해 주차장 개선사업을 펼친다는 소식을 접했다.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이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소위 네트워크 로펌과 사무장 사무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에서 의뢰인에 대한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최선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의뢰인이 분쟁과 갈등의 아픔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김남형 대표변호사, 정진경 변호사, 하태욱 변호사와 의기투합한 이유이기도.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윤리강령을 고수하며 민사, 형사 등 법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책임감을 갖고, 동료들과 늘 소통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꼭 법률문제가 아니더라도 안산시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기꺼이 일조해 나가겠다.

 

Q. 끝으로 안산타임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평소 좋아하는 법 관련 격언중에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가 있다. 이는 공동체인 인간사회에서는 질서를 규율하는 법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즉 사회는 법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법도 사회가 있는 곳에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 법(法)이란 한자어는 물 수(水)와 갈 거(去)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것’처럼 기본 이치를 잘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나 하나 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 만이라도'라는 다짐으로, 기본 이치를 잘 지켜나간다면 분명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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