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와룡암소집도」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이 그린 것이다.

조선 후기의 서화 수장가 석농 김광국은 「석농화원」의 이 그림에 다음과 같이 화제를 써놓았다.

갑자년(1744년) 여름에, 내가 와룡암에 상고자―김광수―를 찾아가서 향을 사르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품평하는데, 하늘이 검은 돌처럼 새카매지더니 소나기가 크게 일었다. 현재―심사정―가 밖으로부터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옷자락이 모두 젖어서 서로 쳐다보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윽고 비가 그치자 정원 가득한 경치와 색채가 꼭 미가의 수묵도와 같았다. 현재가 무릎을 끌어안고 광경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크게 기이한 소리를 외치더니, 급히 종이를 찾고 심계남 법으로 「와룡암소집도」를 휘둘러 내니, 짙푸르고 흥건하다. 나와 상고자가 서로 보며 감탄하고 이어 작은 술자리를 차려 지긋이 즐기다가 파했다. 내가 가지고 돌아와서 늘 사랑하고 아꼈었는데 뒤에 …(중략)… 가져가니 일찍이 마음속에서 왕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신해년(1791) 가을에 우연히 용눌―이민식―의 처소를 지나다 소장한 화권을 보니, 이른바 「와룡암소집도」가 있었다. 쓰다듬고 추억하며 옛날을 돌아보니 두 사람의 무덤가 나무는 이미 한가득하고 나 또한 늙어 백수이다. 지금과 옛날을 비교해 보니 감회가 매우 깊다. 이에 용눌에게 빌어서 다시 내 화원 중에 두고 매양(글자탈락) 슬픈 마음 때를 옮긴다. 김광국.

「와룡암소집도」는 김광수의 서재인 와룡암에서 친한 이들끼리 왕래했던 모임을 그린 것을 말한다.

눈 앞에 펼쳐진 산수화 같은 원림의 모습에 감탄하여 심사정은 붓을 움직인다. 힘이 넘치는 붓질에 흥을 담아 적절히 짙고 옅은 먹으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번짐을 준다. 소나기가 한바탕 퍼붓고 난 후 흥건히 젖은 풍경을 풍취 있게 묘사하니 축축한 공기와 숲속의 솔향이 그림에도 가득 묻어난다. 순간적인 자연과의 교감으로 떠오르는 화상을 종이에 휘두르듯 펼쳐내는 심사정의 예민함과 감수성이 신선하다. 「와룡암소집도」는 짙은 먹을 가득 품은 붓으로 구사한 윤필로 잘 표현되었다. 펼쳐 늘어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사람들이 보인다. 관모를 쓰고 있는 김광수, 둥근 갓을 쓴 김광국과 심사정이다. 시동은 차를 달이는 듯하다, 촉촉하게 젖은 풍경과 빼어난 그림. 피어오르는 차향. 모두 흡족한 마음에 이어진 술자리에서 다시 한번 서화 품평을 했으리라.

그들이 즐겼던 모임에서 한순간 포착하며 그린 것이 「와룡암소집도」이다. 이때가 1744년으로 김광수는 46세, 심사정은 38세였고 김광국은 18세로 이제 막 서화 수집을 시작한 앳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림에 화제를 붙여 쓸 때, 김광국은 이미 65세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함께 알아주던 김창수, 심사정은 세상 등진지 20여 년이 되어 쓸쓸한 마음이 한량없다.

그림에 깃든 사연의 절절함에 한 번 더 보게 되는 「와룡암소집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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