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 David Fridrich: 1774-1840)는 19세기 전반에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작가이자 풍경화가이다.

프리드리히는 1774년 9월 5일 발틱 해안가에 있던 작은 마을 그라이프스발트에서 엄격한 루터파 교도였던 아버지와 마음 따뜻했던 어머니 밑에서 10명의 아이들 중 6째로 태어났다.

그는 일곱 살 되던해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로 사랑하는 두 누이를 차례로 잃었다. 또 함께 스케이트를 타던중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동생이 얼음에 빠져 죽는 일을 겪기도 했다. 당시의 충격으로 그는 청년이 된 후에도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외로운 분위기는 아마도 이러한 불운했던 유년기 기억이 작품에 녹아든 것이 아닐까 한다.

“화가는 자가 앞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그가 말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그의 내면을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는

1818년, 그는 드레스덴에서 마흔넷에 스물 다섯살 아름다운 캐롤라인 보머와 결혼하던 해에 제작한 작품이다.

프리드리히는 드레스덴 전쟁(1813년) 때문에 집을 떠나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엘베 사암 산맥 지방을 여행했었고 여행 중에 감명 받았던 것을 스케치한 후 화실에서 완성했다.

19세기 낭만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보잘것없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그의 풍경화 중에서 가장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내면에 있던 자신만의 동경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자연을 선택하면서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가 된다. 그가 그린 북부 유럽의 풍경은 전통적인 풍경화를 뛰어넘어 심오한 종교적 상징을 부여하고 있다.

옛날 독일 의상을 입고 칼을 찬 남자는 안개 자욱한 산 정상 가파르게 솟은 바위에 서서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골짜기에 피어오르는 안개 바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를 지나 산봉우리와 산맥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드리히는 인물을 즐겨 그렸지만 이 작품처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뒷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에서 산을 오르는 과정은 힘든 인생의 여정을 암시하는 전통적인 표현방법이다. 또 산 정상에 도착하는 것은 인생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안개는 자연의 순환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는 의미가 담긴 풍경화를 제작하면서 안개를 필수적으로 그려 넣었다. 화가는 자신의 내면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 프리드리히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지금의 나로 있기 위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몸을 맡겨 구름과 바위와 나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겠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안개와 산봉우리 너머는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고 안개 바다 아래는 지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차가운 색채를 사용해 우수와 고독의 감정을 표현했다.

미지의 세계와 같은 거친 세상에 홀로 던져졌으나 이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려는 강한 정신이 전 생애에 걸쳐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로 지내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그의 작품에서 실존주의적 고독을 찾아낸 이들에 의해 새롭게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엔 비로소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인정받으며 이 그림이 다시 주목 받게 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장르에서 이 작품을 '오마주' 하면서 뉴미디어로 이미지가 재생산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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