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이상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천착해오던 주제 중 하나이다.

낙원, 별천지,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등과 비슷한 개념에, 산수를 중시한 동양에서 이상 세계는 바로 ‘무릉도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국 동진 시기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은 우리나라에선 일제강점기 때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이기도 했다.

「도원행주도」는 안중식(1861~1919)이 1915년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채색 산수화로,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감각적 아름다움이 눈을 사로잡는다. 화면 가득 녹색을 켜켜이 쌓아 배치한 산세와, 곳곳에 만발한 복사꽃의 강렬함은 당시 그가 1891년과 1899년 두 차례 머물렀던 청나라말 상하이 지역 화풍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안중식은 중국과 일본의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였는데, 섬세한 필치와 화려한 색채가 그의 주된 장기였다.

녹색과 흩뿌려진 복사꽃이 도원의 입구에 즐비하고, 화면 위로 시선을 따라 운무가 띠를 이루고 있다. 녹색 산봉우리는 하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물길 사이로는 배를 저어가는 어부가 있는데, 뱃머리에 낚싯대를 꽂아놓고 잘 아는 길을 왕래하는 것처럼 그 태도가 여유롭다. 아마도 주위의 꽃을 보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귀담았으리라. 노를 저으며 콧노래도 흥얼거리면서―그가 향하는 동굴 안쪽으로는 마을 지붕들이 보인다. 도원에서 뻗어 나온 물길이 구불구불 엇갈리며 활기차게 흐르면서 물길은 저만치 멀어져 간다. 좌, 우 청록의 높은 바위는 신비로운 자태를 띄고 있는데, 산과 바위의 양감은 단단한 필치로, 다각형 윤곽선이 중첩된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산과 바위의 바깥쪽은 청색을, 안쪽은 녹색인 청록산수 기법으로 표현하였는데, 수많은 태점과 가는 선으로 반복 처리하여 입체감이 드러난다. 복숭아나무에는 분홍의 짙고 옅음이 현란하게 섞여서 흐드러져 있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에는 서양화와 동양화의 느낌을 조화롭게 받을 수 있는데, 기법 등의 노련함은 안중식의 변화된 청록산수 풍의 양상을 보여준다.

화제는 당나라 왕유의 「도원행」의 전문으로 안중식이 직접 적은 것이다. 도연명 이후 지어진 글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도원 가는 길의 화려한 풍경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마지막 줄에 ‘시을묘 모춘 신전 안중식’으로 서명하였고 ‘진전한화’ 즉, ‘진나라 전서, 한나라 그림’이라는 인장은 그가 고전을 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면 현대인들 역시 산과 숲, 바다 등 자신만의 무릉도원을 찾아 떠난다. 그리하여 속세의 홍진을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활력을 재충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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