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어느 날부터인가 흑백의 간결한 색의 옷을 많이 입게 되었다. 아마도 색채에 고민이 많던 직장의 디자이너 초년시절 어떤 색을 써야 할지 망설여질 땐 검정을 쓰라던 대학교수님의 조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칸딘스키(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 1866~1944)는 러시아 출신으로 처음으로 순수추상 작품을 제작한 20세기 화가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뮌헨아카데미에서 뒤늦게 학위를 받고 리얼리즘 미술에서 출발, 인상주의를 거쳐 1910년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라 불리는 작품<무제>을 발표했다. 그의 그림은 유연하고 유기적인 것에서 기하학적인 것으로, 마지막에는 상형문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발전했다. 뮌헨의 주요 미술그룹인 청기사파를 창립했다.

여러 가제 형태의 다 다른 흑백의 조화가 있는 작품 바실리 칸딘스키 –30 (Thirty 1937 )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형태의 곡선과 직선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무엇을 그린 것인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뇌를 자극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법과 경제를 배운 칸딘스키가 30세 때부터 미술을 공부해 바우하우스 교장까지 지냈다니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다. 

아직 색을 구별하지 못 하는 영유아에게 흑백 모빌은 두뇌 발달과 집중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흑백은 확실한 색의 대비와 형태를 통해 강한 시각적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미술치료에서 집중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쓰는 색도 흰색과 검은색이다.​

예컨대 주의력 결핍 장애 ADHD 환자들에게는 흰색 도화지에 검은색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칠하게 한다. 스스로 만드는 흑백의 대비는 단순하고 선명하여 집중을 일으킨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던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한 곳을 오랜 시간 보게 되는 것 또한 주의력 향상을 도와준다. 칸딘스키의 <30> 이 지닌 힘은 흑백의 효과만은 아니다.

그림에는 30개의 칸마다 어느 하나 딱 떨어지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문양들이 있다. 

그 때문에 경직되기 쉬운 흑백 가운데서도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하다.

동시에 칸들의 각진 테두리와 규칙적인 교차는 정신의 흐트러짐을 방지한다.

사용한 색은 흑과 백, 두 가지뿐인데도 우리의 눈은 이 그림에서 무한한 세계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칸딘스키의 흑백은 경쾌한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고정관념을 깨는 예술가의 창조적 시도는 우리에게 건강한 내적 긴장감과 창조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가지 예로, 흑백의 혁명적 사용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사람으로 패션 디자이너 샤넬을 꼽을 수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던 샤넬이 어릴 적부터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색이라곤 흰색과 검은색뿐이었다. 샤넬은 이를 어둡고 우울한 게 아닌,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패션에 응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기존의 긴 치마 길이를 파격적으로 잘라버렸다.

여성을 집안과 정조개념에 가두는 정형화된 검은색의 가방, 치마가, 오히려 여성에게 손의 자유를, 사회적 해방감을 제공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샤넬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게 된 이유는 옷 그 자체보다도 옷의 바탕에 깔린,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색은 단지 흑백이지만 이 작품을 보며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