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개 코스·9.5km 길이 힐링코스로 구성, 응용벽화와 조형물 등 설치해
스승 강세황에게 그림 배우던 노적봉공원·부곡동일대 옛길 중심으로 조성
진행방향 표시 리본 마련···성호공원, 제일C.C 등산로 연계 남녀노소 힐링

김홍도 자화상
김홍도 자화상

대한국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김홍도.

안산시는 우리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드날린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1745년 태어난 단원 김홍도는 산수·도석인물·풍속·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중인 출신 김홍도가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데는 강세황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안산은 18세기 조선 예원(藝苑)의 총수이자,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 선생이 30여 년을 머문 고장이기도. 표암의 시문집 ‘표암유고’를 살펴보면, 단원에 관한 생생한 기록들이 등장한다. 가령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을 드나들었다’는 것처럼. 이는 일찍이 맺어진 표암과 단원의 사제 인연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원을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고 일컬은 인물 역시 표암이었다.

<사진제공-안산시 관광과 김홍도팀>

 

 

김홍도축제

 

‘김홍도 도시 안산’ 선포···“천년역사 문화도시의 문화적 최고 자산”

1990년 문화부에서 안산시를 ‘단원의 도시’로 명명한 바 있다. 안산시는 1999년부터 전국 규모의 ‘단원미술제’를 개최했으며, 2006년에는 김홍도의 예술 세계를 기리는 ‘단원미술관’을 개관해 운영중이다. 주요 작품인 ‘여동빈도’를 낙찰받는 등 단원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 전시중이다.

특히 2020년에는 경매를 통해 경합을 벌인 끝에, 70년 가까이 미국에 있던 ‘공원춘효도’를 4억9000만원에 낙찰받으며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을 주제로 그려졌는데, 한국 전쟁 당시 부산에 머물던 군인이 구매해 미국으로 건너가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11월에는 ‘김홍도 도시 안산’을 선포한 바 있기도.

지난해 10월에는 코로나19로 개최되지 못했던 ‘안산 김홍도 축제’가 4년 만에 돌아와 10만여명 관람객들의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김홍도와 함께하는 안산 풍류여행’을 주제로, 3일간 화랑유원지에서 펼쳐진 축제에서는 다양한 기획프로그램과 체험·참여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당시 이민근 안산시장은 “김홍도는 천년역사 문화도시 안산의 최고의 문화적 자산”이라며 “김홍도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역사·문화의 도시 안산을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홍도랑
홍도랑

 

총 3개 코스·9.5km 길이, 전통과 현대 관통하는 문화예술 동시경험

이처럼 ‘단원 김홍도’ 관련 다양한 이슈를 끌었던 안산에는 ‘김홍도 테마길’도 존재한다.

‘김홍도 테마길’은 안산의 대표 인문자산인 단원 김홍도가 스승 표암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년시절을 보낸 노적봉공원 및 부곡동일대 옛길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현재 진행방향을 알리는 리본 등을 설치할 예정으로, 2~3시간 정도 힐링하면 걷기 딱 좋은 코스다.

총 3개 코스, 9.5km 길이로 ▲1코스(2.7km) ‘김홍도 오늘길’ : 김홍도미술관(노적봉공원) ~ 단원조각공원 ~ 성호공원 일원 ▲2코스(2.3km) ‘김홍도 옛길’ : 성호공원 ~ 정재초교 ~ 청문당 ▲3코스(4.5km) ‘청문당 옛길’ : 청문당 ~ 제일C.C 능선 ~ 점성공원이다.

특히 김홍도 미술관과 성호공원, 단원조각공원 그리고 제일C.C 등산로와의 연계를 통해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김홍도 테마길’을 걷다보면, 전통과 현대를 관통하는 문화예술을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다.

▲김홍도 미술관은 안산시 외곽 노적봉 기슭에 자리해 있다.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단원 콘텐츠관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기획을 개최하고 있다.

▲홍도랑의 경우 청문당의 모습을 모티브로 디자인, 고풍스러운 멋을 느낄 수 있다. 성호공원 내 조성돼 단원의 대표적인 풍속화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부조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청문당은 조선시대 4대 만권당 중 한곳으로, 상록구 부곡동에 위치해 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 선생을 비롯한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학문을 배우고 깨우치던 학예의 전당이다. 지난해에는 강세황 선생의 그림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 재현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단원 조각공원에는 김홍도의 작품을 비롯해 49점의 현재조각작품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설치돼 있어 시민들의 문화 쉼터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안산시청 관광과 이재준 김홍도팀장은 “안산에는 우리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드날린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라는 콘텐츠가 있다. 4가지 구성요소를 비롯해 테마길 곳곳에 김홍도 작품을 응용한 벽화와 조형물 등을 설치함으로써, 김홍도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다”며 “매해 10월 열리는 단원미술제와 연계해 수상작을 테마길에 전시하고 걷기 인증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앞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전체에 걸쳐 적극 홍보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단원조각공원
단원조각공원

 

 

가장 유력한 출생지에 자리한 김홍도 미술관을 시작점으로

김홍도의 생애 전체를 기술한 최초의 일대기를 쓰기 위해 수많은 문헌 자료를 찾아 헤맸고, 마침내 ‘천년의 화가 김홍도’를 완성한 이충렬 작가.

그동안의 인터뷰를 검색해 보면 저자는 김홍도가 연령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쓴 ‘서호’ ‘단원’, ‘단구’란 아호가 모두 안산의 성포리 부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고증한 바 있다. 이는 조선시대에는 출생지를 아호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안산에 살았던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시 ‘석민부(釋憫賦, 고민을 푸는 노래)에 나오는 ‘서호를 바라보니 아득하더라’는 구절을 발견했다고.

그렇다면 서호(西湖)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강 서쪽’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 진다. 김홍도의 고향 역시 서호가 보이는 안산의 동네였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 김홍도의 호(號)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단원’이다. 이는 김홍도가 두 번째로 지은 호인데, 이보다 앞서 처음으로 스스로 지은 호는 ‘서호’였다.

서호가 바라다보이는 현장을 직접 찾아다닌 이충렬 작가는 안산 노적봉에 주목했다.

이와 함께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 선생이 안산 노적봉 부근에서 살던 여주 이씨 가문 사람들과 시 모임에서 읊은 시를 모아 1753년 펴낸 시집 ‘단원아집’이 있다.

이 시집의 표지 제목 옆에 성고(聲皐)라고 나와있다. ‘성고’의 의미를 파헤치던 이충렬 작가는 그 유명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안산 지역을 찾아봤고, 바닷가 마을 이름이 ‘성고’라고 표기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고’의 현재 이름은 안산시 성포동이다.

이렇듯 옛 문헌 등을 철저히 연구한 근거를 바탕으로 김홍도의 출생지로 안산시 성포동을 꼽았다. 바로 현재 김홍도 미술관이 자리해 있는 곳이다.

이 밖에도 김홍도 미술관은 ‘표암유고’, ‘석민부’, ‘단원아집’ 등 고전 문서를 통해 밝혀진 단원 김홍도의 가장 유력한 출생지인 만큼, 의미가 큰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김홍도 테마길’의 시작점으로, 향후 테마길 활성화 및 홍보에 있어서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건물은 모두 네 동. 1·2관에서는 현대미술전, 3관에서는 단원콘텐츠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상상미술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청문당
청문당

 

약관에 도화서 화원, 당시 모든 화가들의 꿈 ‘어진화가’로 활약

“조선의 그림은 김홍도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당대 예술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

약관의 나이로 도화서 화원이 된 김홍도는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그리며 당시 모든 화가들의 꿈이었던 어진화가로 활약, 정조의 신임을 받게 된다. 덕분에 중인 출신으로서 파격적인 안기찰방, 현감 등 벼슬살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그림쟁이였던 김홍도의 벼슬살이는 그림처럼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또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삶은 항시 어려웠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망한 시점 역시 불명확하며, 아들에게 쓴 편지를 통해 적어도 환갑(1805년)까지는 그림을 계속해서 그렸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김홍도 테마길
김홍도 테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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