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미술세계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흔히 사군자라 일컫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는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이 중에서도 추운 날에도 찬연하게 꽃을 피워내는 매화는, 선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꽃으로서 시·서·화의 단골 소재로 이용되었다.

<매화서옥도>는 조선 말기의 화가 조희룡(1789~1866)이 족자에 그린 산수화이다. 사람이 뜸한 산속에 은일처사가 지은 조그마한 서옥과, 그 주변에 만발한 매화 숲의 전경을 담아냈다. 서옥의 창문 사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쌓여있는 책과 매화가 꽂혀있는 호리병이 눈에 띈다. 그림의 주인공인 선비는 매화의 자태를 감상하는 듯하다. 겨울이 깊어가는 산의 한 가운데, 수려하게 흐드러진 매화는 자못 환상적이다. 사물의 정형화된 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나부끼듯 자유로운 필치로 묘사된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의 원숙한 기량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매화서옥도>는 조희룡의 매화 그림 중 단연 백미로, 화폭의 어느 곳을 바라보더라도 공감각이 촉발되는 작품이다.

<매화서옥도>는 ‘매처학자’라 불리던 북송의 시인 임포의 고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그는 고산에 기거하며,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아 평생을 노닐었다고 한다. ‘모든 꽃 떨어져도 홀로 고운 것을 자랑한다.’는 설중매를 무엇보다 가까이하고자 했던 스스로의 이상향을 구현한 것이다.

조희룡은 <매화서옥도>를 방 어딘가에 넣어뒀다가 20년 만에 우연히 꺼내어 후기를 추가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좀이 슬고 구멍 난 그림을 찾았다. 바로 스무 해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였다. 그저 장난스러운 손놀림이었으나, 제법 기이함이 있고 연기에 그을려 거의 100년은 된 것 같다. 매화 그림이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랴! 그림을 펼쳐보니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보는 것만 같구나!’라고 하였다. 그림의 빈자리에 심중을 적어내려가는 순간, 마른 매화에 생기가 돌고 꽃내음이 금방이라도 펴져 나갈 듯했으리라. 글을 맺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린 조희룡의 벅찬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매화서옥도> 외에도 여러 매화 그림을 남긴 조희룡. 그는 매화를 깊이 사랑하였고, 중인 다운 자유로움으로 매화가 가진 매력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내어 우리에게 탐미의 기회를 선사했다. ‘흰나비가 매화의 흰색을 보았다면 혼백을 잃었으리라.’라는 임포의 말처럼, 우리 역시 매화의 아름다움을 응시하며 근심과 걱정을 잊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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