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 토실토실 알밤을 주워서 올 테야.”

아련한 기억이 초등학교 어린 시절에 잠시 머문다. 학교 운동장 구석진 곳에 토끼집이 있었다. 오물거리는 입 모양이 하도 신기해서 한 움큼 뜯은 풀을 들고 등하굣길에 들르곤 했다. 그 풀을 넙죽 받아먹던 포동포동한 토끼가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가을 토끼, 조를 탐하다.」는 최북(1712∼1786)이 그린 그림으로 토끼의 붉은 눈, 털 등을 잘 관찰하여 세필로 예리하게 묘사하였다. 조 밭을 배경으로 동작을 잠깐 멈춘 토끼의 모습에서 일순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렇듯 화가는 토끼가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조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능숙하게 그려냈다. 아울러 간결한 배경 묘사는 그의 산수화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듯이 습윤한 느낌으로 표현되어, 기량이 뛰어났던 최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알이 잘 영근 조는 풍성한 수확을, 통통하게 살이 붙은 토끼는 번영, 풍년을 상징하였다.

 

토끼는 예로부터 다양한 속담과 고사를 통해 묘사되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옛사람들은 토끼가 달에 살고 있으며 달의 표면에서 연상된 방아를 찧는 토끼를 달의 정령이라 여겼다. 달토끼에게 무병장수와 장생불사, 그리고 부부애의 의미를 부여하는 등 토끼는 달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런가 하면 토끼는 십이지신 중 네 번째 동물이다. 통일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묘에 새겨진 토끼상은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칼을 든 모습으로 능묘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토끼는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 시대 한시, 민화, 구비문학의 소재가 되었다. ‘토끼와 호랑이’ 설화에서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기지를 발휘하는 동물로 지혜롭고 총명한 동물로 묘사되었다. ‘거북이와 토끼’ 설화는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가 위기를 극복한 것과 연관이 되어있는데 해학미가 잘 드러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수궁가」, 「토별가」 등의 판소리 작품과 <별주부전>, <토생원전> 등의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렇듯 큰 귀와 동그란 눈, 짧은 꼬리 등 개성적이고 귀여운 외형을 가진 토끼는 동요, 동화, 교과서, 만화영화 등 소재가 될 정도로 높은 호감과 친숙함을 산 동물이었다.

뭇사람들의 상상력을 숱하게 자극했던 인간은 달에 발을 내디뎠다. 그곳에 물론 달토끼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토끼는 월신의 존재로 상징화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23년 계묘년을 맞아 지혜로움과 민첩함으로 난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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