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미술세계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조선 시대의 흔치 않은 여성 초상화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하나 있다, 숙종이 화원에게 왕비의 초상화를 그릴 것을 명령하자 신하들이 어명에 반대하였다. 이유는 다름 아닌 왕비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초상을 그릴 때, 남녀칠세부동석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성리학이 교조화된 시대의 일화이긴 하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합리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조선 시대 초상화의 대상은 왕이나 사대부 등 남자들이었기에, 여성은 초상화나 사진 등으로 자신의 모습을 남기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오늘 살펴볼 그림을 그린 채용신(1850~1941)은 우리나라 최초로 그림 주문 제작 공방을 차린다. 이 공방에 여성들이 자신들의 초상화를 의뢰했다고 전해진다. 채용신은 자신의 며느리에게 사진 기술을 가르쳐 여성 전문 사진관을 열게 하는 등 당시 시대상으로 찾아보기 드문 선각자이기도 하다.

「노부인 초상」는 채용신이 82세이던 1932년에 그린 근대 여성 초상화 작품이다. 대지주의 늙은 부인의 칠순을 기념으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소작농을 거느렸을 안주인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사뭇 당당하다. 고관대작이나 될 수 있었던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남 부러울 것이 없었을 터이다. 흰 비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쪽 찐 머리, 외꺼풀의 눈매, 꽉 다문 입, 둥근 턱의 소유자인 노부인은 초상화를 위해서 공들여 치장했다. 복주머니 모양의 붉은색과 푸른색 줄을 늘어뜨린 노리개가 하얀 저고리 밑에 매달려 밝은 기운과 생기를 돋운다. 머리의 금비녀, 무릎 위에 얹은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 하얀 치마 아래로 부드러운 곡선의 코를 지닌 가죽신 등 소품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부를 과시한 모습이다.

노부인초상-국립현대미술관
노부인초상-국립현대미술관

 

「노부인 초상」은 정면상으로, 인간의 고유한 개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화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옷 주름, 얼굴과 목의 경계는 명암을 넣고 얼굴은 가는 붓으로 수많은 선을 그어서 깊이감을 주었다. 서구의 기법과, 전통적인 묘사와 명암법이 혼재한다. 동서양의 것들을 두루 받아들여 독창적인 자신만의 ‘석지 필법’을 완성한 것이다. 붓끝으로 모델의 나이, 직업, 성품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내었으니, 채용신 말년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채용신의 제작된 작품들은 무보수로 그린 우국지사의 초상화와 주문 제작화가 많다. 그는 ’채석강 도화소‘를 차려 아들, 손자와 함께 가족 공방을 운영하면서 주문에 응했다. 사진이 없는 경우에는 사진사를 출장 보내어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실물과 닮지 않을 땐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면서 자신만만함을 보인 그가 그린 초상화의 값은 전신상에 100원, 반신상에 70원이었다. 당시 소 한 마리를 80여 원에 사고판 것으로 보아, 대강 소 한 마리 값을 치르고 나서야 초상화를 소유할 수 있었다. 정찰제로 상업화된 근대적 전업 작가의 등장은 사회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채용신의 때와는 달리 오늘날 초상사진은 매우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멋진 모습을 보존하고픈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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