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칼럼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혐오감을 갖게 하는 모습 곳곳에서 (Tv브라운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아직은 그렇게 늙지 않은 중년 쯤 아니면 2·30대 쯤 된 사람이 머리는 푸시시하고 얼굴엔 턱과 코 주변을 비롯한 양 볼에 검정 털을 길어 돼지머리인지 원숭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하고 등장 무엇인가 지껄이는 걸 보면 정말 보기 좋지 않다. 그걸 볼 때면 떠 오른 것이

세상을 너 혼자 사는 게 아니야/ 모두가 함께 산다는 것 잊어서는 안 돼/ 안 돼지!, 안 돼! // 인생길 천 갈래 만 갈래라 해도/ 꽃길 그길 서로가 서로를 껴않고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 나만 좋다고 남에게 혐오스러움 그건 안 돼 / 머리 얼굴 그 꼴, 옷 그게 뭐니/ 뭐니! 뭐야! // 그 모습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게 원숭이 기린/ 털 뽑는데 달아난 닭 꼴 싫다/ 싫다! 싫어!

세상에 그런 노래가 있다면 음치불구하고 부르고 또 불러 보겠다.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안타깝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본시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다 육지로 옮겨 흙을 밟고 흙냄새를 맡고 산다. 그래서인지 흙을 밟지 않고 흙냄새를 맡지 못하면 환장, 정신이 이상해진다. 그게 심하면 돌아버린다.

19세기 후반 2차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선진국 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람들이 대규모 집단생활을 하면서 차도 인도는 물론 주택가 주변 공간 모두를 아스팔트 또는 콘크리트로 땅을 봉해 버리고 건물을 높이 지어 그런 환경에서 생활을 하면서 흙을 밟지도 흙냄새를 맡지도 못하고 생활을 하다 보니 육체는 부실해지고 정신 또한 정상이 아니다. 소 돼지 그런 동물보다도 못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상이 변하고 또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게 인륜도덕이다. 예로부터 전해져 온 말이다.

남부끄럽지 않으면 옷을 흴랑 벗고 맨몸으로 살지 못할까? 인간에겐 수치심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있어 나뭇잎, 풀잎으로 가려야 할 곳을 가리고 살았다. 할 말도 가려가며 했다.

그런데 가끔 인간이 지금의 원숭이와 흡사하게 살았던 시절의 모습 그 모습을 보이며 조잘조잘하는 꼴이 참으로 안타깝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동물만 해도 2천21년 1월 현재 지구상에 79억 명이 넘게 살고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너희들 그 모습 그게 사람 꼴이냐? 인간이 사는 길 79억 개도 더 된다 해도 각자 가야 할 길, 걸어야 할 길은 따로 있다.

문제는 나 좋다고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모습 또는 언행 함부로 하는 그런 사람 특정집단들에서 보이는데 그런 모습 언행 자제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 공동체사회에선 다수가 싫지 않아야 한다. 혐오스러운 짓 하는 것 보고 웃는다고 그게 꼭 좋아서만 웃는 게 아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비웃기도 한다. 그것도 모르면 천치다.

그 인간들! 즐거움이 지나치면 눈물이 나듯 혐오스러움이 지나쳐 웃음이 나오는 데 그것도 모르고 좋아서 웃는 줄 그래서 그 꼴 보이며 낮 뜨거운 줄 모르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제발 말이며 행동거지 가려서 하며 다 함께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함께하면 안 되나? 죽지 못해 사는 처지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나만 좋아 남에게 혐오감 줘서는 안 된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최소한 지킬 것 지키고 살아야 한다. 세상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뜨거운 여름날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 못할까?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