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렬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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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학기자
오만학기자

“네가 만약 무인도에 떨어져야 하고, 그곳에 네가 가진 물건 중 하나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이 물음은 대답하는 이가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할 때 간혹 묻는 것이다. 대답하는 이는 잠깐의 순간 동안 깊은 고민을 한 뒤 저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택하고 답한다. 

‘무인도.’ 그곳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한 환경으로 대표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무인도에 떨어져 산다.’는 말은 즉 ‘죽음에 처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때문에 개인이 죽음에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강하게 열망하고 선택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체 게바라. 그는 수도 없는 혁명의 전장을 누빈 ‘혁명의 아이콘’이다. 그만큼 그 일생은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삶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항시 죽음을 염두 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졌다. 그런 그가 혁명에 실패해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의 배낭에 이목이 집중됐다. 홀쭉한 배낭에 그가 필사한 시가 적힌 녹색 노트 한 권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시를 한 편 한 편 필사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시를 가치 있게 생각했다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찰나의 순간에 자칫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체 게바라에게 막간의 여유를 가져다준 시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민중의 혁명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자 했던 청년이 시를 필사하기까지 그를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그 이율 그의 녹색 노트 속에 담긴 69편의 시들의 분석에서 찾는다. 

푸르른 노트에 담긴 각종의 시는 크게 그가 사랑한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컬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 이상 4명의 작가의 작품으로 구분된다. 그들의 시는 하나같이 생명의 의지, 사랑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 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작품이었다. 체 게바라가 죽음의 문턱에서도 이상의 작가들의 시 필사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살벌한 전운이 감도는 전장의 현실 속에서도 시의 필사를 통해 인간의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로 주저앉고 싶을 때면 기옌의 시를 통해 혁명을 위해 품었던 뜨거웠던 열정으로 되돌아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2인자 자리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모든 특권을 저버리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제 삶을 기꺼이 바치길 주저치 않았던 체 게바라, 그를 혁명의 전사로, 민중의 벗으로 재탄생시켰던 69편의 시가 담긴 녹색 노트. 그리고 거기에 담긴 사상의 씨앗. 그것이 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혁명의 청년을 떠올리게 되는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체’의 녹색 노트가 담긴 배낭은 홀쭉했지만, 텍스트로 전달되는 그 의미는 뚱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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