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ㅣ교육 칼럼ㅣ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보물(寶物)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달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혹시 없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2년 10월∼1993년 5월 64부작으로 방영된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는 남아선호사상의 뿌리가 깊었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이란성 남녀 쌍둥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남자와 여자의 성별에 대한 극명한 차별을 보여주었다. 특히 쌍둥이인 딸이 뭐든지 잘하면 잘할수록 아들의 길을 막는다고 엄마는 더 싫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가족 내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어졌다고 본다면, ‘가정 내에서 자식 간의 차별과 편견도 없어진 걸까?’

자녀들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다. 성격, 성적, 생활 태도, 청결의 정도, 외모에 대한 관심, 의생활, 식생활, 수면시간 및 습관 등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 부모 관점에서는 너무나 다른 자녀들의 특성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이런 경우 각각의 요소 중에서 좋은 측면을 가진 자녀가 기준(基準)이 되고, 조금 부족한 측면의 자녀에게 꾸지람을 하게 된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말의 예를 들자면 ‘형은 잘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라는 말이다. 너무 쉽게 이런 비교를 서슴없이 한다.

살인이나 범죄 현장에서 가끔 ‘부모가 너무 나만 미워해서....’ ‘부모가 너무 차별을 해서...’ 어릴적부터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평생 지니고 살게 된다. 특히 부모의 편애(偏愛)는 가장 최악의 범죄가 될 수 있다. 잘하는 아이에 대한 집착은 모든 가족에게 상처(傷處)와 오욕(汚辱)를 남긴다.

엄마들이 대화하면서 아이들이 들어서는 안 될 대화를 할 때, “아이들이 들으니 다음에 합시다” 라고 하면 “얘들이 뭘 안다고...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부모도 있다. 어릴 적 기억 중에서 초등학교 때의 기억이 가장 생생하고, 중·고등학교 때 부모가 ‘나를 어떻게 대해 주었는지’를 기억하게 된다. 좋은 기억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나고, 좋지 않은 기억은 성장해서도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결코 어리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태아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한다. 3∼5세는 아동 발달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시기이고,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은 잠재적으로 인성 형성의 기본이 되고, 초등학교 시절 이후부터는 스스로 겪었던 일들을 죽을 때까지 기억할 수 있으며 이때의 기억들은 어쩌면 인생을 사는데 밑바탕이 된다. 가끔 부모에게 받은 그대로 자녀에게 행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어릴 적 일상에서 봐 온 행동들은 그대로 몸에 익숙해져서 행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출가한 두 딸은 가끔 어릴 적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직장생활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열쇠를 목걸이로 달고 다니면서 동생을 기다리고 돌보았던 이야기, 반장이 되어 행복했던 이야기, 언니와 함께 학원에 다니며 배웠던 음악, 미술 이야기, 등을 하면서, 너무나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두 딸의 기억은 때로는 다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각각의 개성에 따라 성장하였고 이제 자신의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고, 자녀로 인해 상담할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나도 그랬냐’고 물어도 본다.

아이들의 장래는 성적이나 어떤 한 가지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요구와 흐름, 각 분야의 인재 필요 정도, 맞춤형 능력과 실력, 주위의 협력 정도, 때로는 ‘운수(運數)’, 등 소위 말하는 성공(成功)은 다양한 종합적인 결과의 집합체(集合體)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느 자녀가 성공해서 부모에게 효도(孝道)할지 모른다.

자녀는 누구나 귀한 나의 자손이라는 점을 되새기면서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더라도 편애(偏愛)나 비교(比較)가 아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나는 부족한데 부모는 나를 더 아껴주고 있구나’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성숙(成熟)해야 하고,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자녀들은 결코 영원한 ‘어린아이’가 아니고 성장 과정을 ‘영원히 기억하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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