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ㅣ한정규 칼럼ㅣ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시계가 흔하지 않았다.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손목에 차고 다니는 시계를 보통 성인도 갖지 못했다.

농어촌산간벽지에서는 새벽이면 닭이 그것도 수놈이 시간을 알리는 시계 알람역할을 했다. 새벽 닭울음소리를 듣고 날이 밝아오는 것을, 동이 뜨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그 날 하루를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낮 12시면 점심 먹을 때라고 밤 10시면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금 시간을 알렸으며 밤 12시는 통금시간이 됐으니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새벽 4시면 통금이 해제 됐음을 알리는 사이렌을 그 사이렌소리가 곧 시계였다. 너도 나도 가난하고 없이 살았던 시대 이야기다.

그 때 그 시절 시계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며 가진 자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귀하고 귀했던 시계가 과학문명의 발달과 재물의 범람으로 개들도 목에 시계를 걸고 다니는 세상이 됐다.

시대의 변화는 아이들이 싸놓은 똥이나 먹고 걸핏하면 사람이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면 매를 맞고 깨갱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던 개, 그들이 언젠가 부터 여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안방 아랫목 또는 거실 소파 그 중심에 앉아 그것도 여인의 무릎위에서 TV를 시청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개가 말썽을 피우자 남편이 저놈의 개새끼가 말썽을 그리고 빗자루로 때렸다. 그것을 본 부인이 남편에게 그 애에게 말로 하지? 말로하지 않고 때리느냐며 역정을 든다. 남편이 개새끼가 당신 남편이라도 되느냐 라며 저놈의 개새끼를 쫓아 내버리겠다고 했다. 부인은 왜 저애를 쫓아내느냐며 저 애가 보기 싫거든 당신이 집을 나가면 될 걸? 그렇게 싸우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가하면 새벽이면 꼬끼오하며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던 닭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집단수용소로 그곳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의존 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어딘가로 끌고 가서 목을 비틀어 죽인다. 닭울음소리 듣기 싫다며 짜증을 낸다. 세상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그 말이 맞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사람팔자 뿐만 아니라 개 팔자도 닭 팔자도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세상이 됐다.

고양이에게 죽기 살기로 쫓겨 다니다. 잡혀 물려 죽기만 하던 쥐 팔자도 어떻게 될 줄 아무도 모른다. 꼬끼오하고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던 닭이 집단수용소에 갇혀 자유를 속박 받으며 살듯 사람팔자 언제 어떻게 될 줄 아무도 모른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가다오는 미래 그 때를 생각해서 잘 살아야 한다. 재물 조금 가지고 있을 때, 보다 높은 권력 쥐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시계를 대신 시간을 알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닭이나, 안방에서 귀염을 받고 살다 개에게 쫓겨 난 고양이 꼴 되지 않으려면 세상 잘 살아야 한다. 재물 권력 있을 때 잘해 그 말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 또한 그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점 잊어서는 안 된다. 재물 남들 보다 좀 더 가졌다고, 권력 남들 보다 더 움켜쥐고 있다고 그것 영원할 줄 알고 거들먹거리고 우쭐해선 안 된다. 잠간 사이 바뀐다.

새벽을 깨우는 닭이 필요 없듯 똥이나 먹고 주인에게 발길로 차이던 개가 안방을 차지하듯 세상사 모른다.

돌고 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재물 조금 가졌다고 별것 아닌 권력 쥐었다고 거들먹거리는 그런 모습 보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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