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한정규 칼럼ㅣ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판단 못하고 무엇이든 할 생각부터 한다면 그것이 곧 괴로움을 낳고 행복 아닌 불행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행복은 뜻대로 해 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구분해 내는 능력에 비례한다.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두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과욕, 욕심과 판단능력이다. 더불어 오만이다. 진정한 행복을 바란다면 그 무엇보다 오만을 버려야 한다.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가질 때 행복은 멀어진다.

주위에 정치를 하는 한 지인이 있다. 사람들은 그가 정치를 하기 전에는 정신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늘 즐거움이 몸에서 솟아나 그와 함께 있기만 해도 행복해진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그 후 그는 만날 때 마다 요즘에 어떻게 잘 지내셨느냐 안부를 물으면 바빠 죽겠다고 했다. 바빠 죽겠다는 말을 특허 내 입에 달고 살았다. 불행의 징조였다.

정치를 하겠다고 하기 전 볼 수 있었던 여유, 행복함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정치를 하겠다. 마음을 갖는 그 순간 그에게선 행복이 줄행랑을 처 버리고 고통이이라는 쇠사슬이 몸을 묶어 꽁꽁 동여 매 버렸다. 그에게서 행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즐거움이 몸에서 솟구쳐 남들에게 행복을 주었던 시절 쌓아 놓았던 인심 덕택에 국회의원선거에서 승리 정치인이라는 명찰을 달았다. 정치인 국회의원 명찰을 달면 더욱 더 행복해 질 줄 알았는데, 무엇 보다 자신이 하고자 해서 하는 일이라서 퍽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것과는 반대였다.

얻는 것 이상 잃으니 죽겠다고 했다. 얻는 건 권력이요 잃은 건 행복이라 했다. 행복은 절대적 권력도 절대적 재물도 아닌 오직 마음, 자기 가슴뿐이더라 했다.

임기 내내 그렇게 살던 그는 또 다시 출마를 했다. 이번엔 승자가 아닌 패자가 됐다.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했던 그 순간 그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에게서 행복은 오간데 없어지고 불행의 그늘만 깊어져갔다.

국회의원시절 대접받던 잘 못 된 버릇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얻어먹는데 이골이 났다. 그렇다보니 가까이 하던 사람들 하나 둘 멀어졌다.

어느 땐가 부터는 그만 외톨이가 됐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이 입만 가지고 살다 보니 행복은 오간데 없이 불행만 가슴을 두들기는 데 찾아드는 불행을 내쫓을 수가 없다며 한 숨을 쉬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었다. 행복도 불행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슴속에 있다. 다시 말해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충청북도 음성 최 부자 집 아들 최귀동이 일본에서 살다 1945년 독립이 돼 돌아왔다. 돌아 와 보니 부모형제들 오간데 없이 집안이 풍지박살이 돼 오갈 곳 없는 비렁뱅이가 됐다. 다리 밑에 거적을 치고 그곳을 삶터로 이집 저집 문전을 드나들며 얻어먹고 살았다. 그 때 거리에는 늙고 병든 거지가 떼를 지어 다녔다.

그 거지들을 보고 자신은 행복하다며 다리 밑에 그들 20여명을 모아놓고 동냥을 해서 먹여 살리며 하는 말이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했다.

최귀동이 늙고 병든 거지들을 모아놓고 구걸 먹여 살리는 것을 천주교 오웅진 신부가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음성꽃동네다. 최귀동은 더 없이 행복해 했다 한다.

행복, 반드시 권력이나 재화를 가져야 누리는 것 아니다. 그런 것 없이도 마음을 어떻게 갔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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