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말은 고대부터 인간에게 매우 긴요한 동물로 자리매김했다. 사냥과 채집 등의 활동에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말은, 충직하고 굳세며 희생적인 성품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중에서도 백마를 신령하고 상서롭게 생각하여, 행운과 성공을 가져다주는 영물로 여겼다. 그렇기에 백마는 신에게 바쳐지는 값진 제물로 쓰이기도 했으며, 전투를 지휘하는 대장의 믿음직한 탈것으로 전장을 호령하기도 했고, 때로는 신하의 모습으로 왕에게 충성하는 존재로 시와 그림에서 묘사되기도 했다.

<유하백마도>는 말 그림에서 독보적인 필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공재 윤두서(1668~1715)가 그린 그림으로, 선비의 호연지기와 조화를 이루는 백마를 묘사한 것으로 사실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버드나무 한 그루 앞에 하얀 말이 서 있다. 시원한 바람결에 버들가지는 물결이 치는 듯하고, 그 아래 땅에는 파란 풀들이 대지의 기운을 함뿍 드러내고 있다. 비록 나무 기둥에 묶여있긴 하나 백마는 준수한 자태를 뽐내면서 언제라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기풍이 씩씩하고 당당하다. 안장 같은 마구를 걸치지 않은 채 서 있는 말의 부드러운 갈기와 꼬리털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탄력적인 몸매와 뒷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그 용모가 수려하여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푸른 버드나무, 붉은 고삐, 흰색의 말이 제각기 색감을 뽐내면서도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생동감을 준다. 그림에 찍혀 있는 ‘효언’, ‘동해상인’, ‘공재’의 세 개의 낙관이 찍혀 있는 윤두서의 그림은 <유하백마도>가 유일하다. 그만큼 윤두서가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눈에서 콧등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곡선과 콧구멍의 묘사는, 윤두서의 전형적인 표현 방법으로 그의 작품임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유하백마도>처럼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려진 말들은 제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채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당시 최고의 서화 비평가인 남태응의 <청죽화사>에는 윤두서가 중국의 <당시화보>, <고씨화보>를 참고로 하여 연습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윤두서의 그림 그리는 방식을 보여주는 기록도 더불어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공재는 말을 그릴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 주목하여 보기를 몇 년간이나 계속했다. 무릇 말의 모양과 의태를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고 털끝만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는 연후에야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려 본 그림을 참모습과 비교해 보고서 터럭 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즉시 찢어 버렸다. 반드시 참모습과 그림이 서로 어울린 다음에야 비로소 붓을 놓았다.’.

그런가 하면 공재의 아들인 윤덕희가 남긴 <공재공행장>에서 ‘공재공은 일찍부터 말을 좋아해 항상 준마를 길렀다. 그러나 공은 자제들이 교외나 먼 곳에 가더라도 말을 타지 못하게 하고 걸어 다니게 했다. 공이 그렇게 한 것은 함부로 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라는 묘사가 있어 그의 유별난 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을 한껏 담으려 했던 화가와, 그에 부응하는 듯 기품 넘치는 백마는 진실로 보기 좋은 조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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