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한정규 칼럼ㅣ

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지나친 경쟁심은 선善을 품은 악惡이 될 수도 2022년 한국은 마치 선거해인 듯싶다. 3월에는 20대대통령선출을 위한 선거를 치렀다. 또 6월은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교육감선출 그리고 시군구 지방의회의원선출 등 선거로 반년 동안 나라가 원통 들썩였다.

문제는 선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경쟁자가 있다. 경쟁자들은 상대 후보의 능력보다는 지난 날 흉허물을 들춰 내 그것을 가지고 맹비난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거짓까지 꾸며 내 퍼트린다. 그야말로 볼썽사나운 광경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경쟁이 선을 품은 악으로.

남을 음해하면 자신도 다친다는 것을 모르는지 그 짓 서슴지 않는다. 하기야 서로 똑같은 처지이니 다치는 것 걱정하지 않는다.

여름 햇볕이 따갑게 내리 쫴는 날 초등학교 선생이 학생 중 장난꾸러기 영식이와 순돌이에게 학교 담장 밖 실개천에서 고기를 잡아 오도록 시켰다. 많이 잡아 온 사람에겐 상으로 맛있는 수박과 참외를 주겠다고 했다.

영식이가 실개천에 들어가지 않고 개천가에서 서성인다. 그것을 본 갑순이가 영식에게 왜 개천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서성이느냐고 묻자 쉬쉬하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리고 순돌이가 실개천에 들어가기 위해 오면 순돌이를 밀어 넘어뜨려 개천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자기 혼자 실개천에 들어가 고기를 잡으면 한 마리를 잡아도 순돌이 보다 많이 잡아 상금을 받게 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식이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영식이는 고기를 잡는 것 보다 경쟁자인 순돌이를 어떻게 하면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특히 위정자들 간에는 치열한 경쟁사회가 됐다. 그래서 걸핏하면 상대방의 작은 흠도 들추어 대단한 것처럼 떠벌린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다. 뒤에서 남을 음해하고 욕을 하면서 통쾌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성의 추악한 일면이며 사회생활에서 가장 추악한 행동 중 하나다.

중요한 점은 경쟁심은 필요악이다. 사회발전이, 개개인의 발전이, 경쟁에서 비롯된다. 경쟁심이 없으면 개인발전은 물론 사회발전도 국가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경쟁이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조직 내에서 직원개개인간의 지나친 경쟁은 조직에 득만 되는 것 아닌 실이 더 클 수 있다.

그 또한 경쟁이라는 선이 악이 된다. 관리자는 그 점을 충분히 인지 지나친 경쟁 또는 불필요한 경쟁으로 조직에 누가 되는 경쟁은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문제는 대부분 조직에서 특히 기업 등에서 열심히 해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직원 간 단위조직간 경쟁을 조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지나친 경쟁은 직원 간 단위조직간 증오 또는 미움 그리고 공유해야 할 정보가 단절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증오하는 사람은 멀리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피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은 필요하다. 경쟁은 적극적이어야 하되 악은 어떤 경우든 저버려야 한다. 경쟁을 빌미삼아 선을 악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다.

선거에서 상대후보 흉허물을 터무니없이 들춰내는 것도 학교 직장 등에서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것도 선만이 아닌 악이 된다는 것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나친 경쟁심은 선과 악이 상존한다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경쟁심이 선을 빌미로 한 악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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