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금강산은 한반도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명산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옛사람들은 기암괴석이 즐비한 금강산을 기이한 산 중 으뜸이라는 의미로 ‘산의 재자(才子)’라 일컬었다. 금강산은 그 명성이 중국까지 널리 알려져서, 명나라 사신들은 금강산 유람을 하겠다며 조선 정부에 졸라댈 정도였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금강산은 많은 화가가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여 화폭을 채우게끔 만드는 좋은 소재였다.

단발령은 내금강을 오를 때 대면하는 고봉으로, 금강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단발’은 말 그대로 머리를 깎는다는 뜻인데, 망국의 왕자였던 신라의 마의태자가 이곳에서 삭발하였다는 설화에서 생긴 지명이라고 하다. 혹은 고개 너머 대자연의 풍광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머리를 깎고 속세를 뜰 마음을 일으킨다고 하여 단발령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시인 이병연은 금강산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신선이 사는 궁궐의 자물쇠를 연 듯하고, 아름다운 허공에 부용꽃을 묶어 놓은 듯하다.’. 그런가 하면 개화기에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을 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단발령 고개를 넘으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아, 나는 그 아름다움,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진정 약속의 땅일진저. 진실로! 이곳은 이산의 무수히 많은 산사 중의 한 곳에 일생을 묻으려고 금강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우리 식으로 말해, 하나의 루비콘 강이다.’. 이런 평을 참고하여 이인문의 그림을 음미해 보자.

이인문(1745-1821)의 ‘단발령망금강도’는 운해를 깔고 앉은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마치 신기루와 같아 감탄사를 절로 일으킨다. 전체적으로 가로로 길게 펼쳐져 배치된 금강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으며, 그 구도 선정은 교묘하다.

화면 구성은 서로 닿을 수 없는 듯 이쪽 산과 저쪽 산의 두 공간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단발령에서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산줄기를 과감하게 생략하여 신령한 느낌을 주었다. 고산준령들은 암산과 토산으로 이루어져 질감의 대비를 드러낸다. 암산은 꽃잎들이 겹쳐진 듯 오밀조밀하며, 토산은 숲속 가득 미점으로 채웠다. 그 주위는 먹의 농담으로 물기를 머금게 했다. 그에 반해, 가까운 쪽의 단발령은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인문의 옹골차고 섬세하며, 유려하기까지 한 필치가 잘 드러난다.

화폭의 우하단에는 금강산으로 길을 재촉하는 세 사람이 단발령에 멈춰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들의 시선 너머로 숭앙의 대상이자, 웅대한 기운을 풍기는 ‘개골산’의 자태가 드러난다.

자연과 일체감을 갖게 만드는 이인문의 금강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금강산에 올라 화폭에 자신만의 감상을 풀어놓고 싶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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