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중국 당송팔대가의 일원으로 꼽히며 소동파로 알려진 소식은 유배지에서 ‘적벽부’를 지었다.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다 유배된 그는, 친구들과 함께 삼국지의 전장으로 익히 알려진 적벽을 찾아 뱃놀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조조와 주유 같은 영웅들의 모습을 상기하며 인생무상을 읊은 것이다.

소식의 작품은 성리학자들에게 추앙받아 중국은 물론이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적벽을 소재로 한 그림들도 그려졌는데, 오늘 살펴볼 <적벽부도>가 바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적벽부도>의 대부분을 수놓은 것은 장강의 물결만큼이나 거대한 자연이다. 화면의 오른 편으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 산세, 먹빛이 뚜렷한 산봉우리, 무성한 나무와 바위 등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거대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웅장한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소식 일행이 탄 조각배는 화면 왼쪽 아래에 작디작게 묘사되어 있다. 다섯 명이 탄 일엽편주의 뱃머리에는 검은 동파건을 쓴 소식이 앉아있다. 배 한가운데에는 술상을 차려놓고 생황이나 퉁소 따위를 들고 있는 유람객의 모습도 보인다. 술을 따르는 시동과 사공의 모습은 활력이 넘친다. 일행들은 저 멀리 포말을 일으키며 울리는 폭포 소리를 반주로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부지런히 오가는 담소와 취흥 끝에 터지는 웃음, 뱃전을 두들기는 등의 행동에서 강호 한정을 즐기는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인물들의 표정과 옷 주름 등은 절묘한 선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인 관료였던 성현은 자신의 저서인 ‘용재총화’에서 이르길 ‘안견은 천성이 총민한 데다 고래의 명적을 많이 보고 연구하며 그 요체를 터득하고 고금 명가들의 장점을 모두 규합 절충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였으며 그의 산수화는 특히 빼어났다.’고 했다.

<삼강행실도>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초상화와 사군자는 물론이며 의장도까지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안견이지만, 그가 그린 것으로 확실시되는 작품은 저 유명한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니 아쉬운 일이다. 무릉도원을 세상에 현현시킨 것과 같은 안견의 화풍은 정선, 이방운, 조석진 등 후대의 화원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신사임당은 물론이고,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승려인 슈우분 등도 그의 화풍을 참고했다고 하니 그 빼어난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소식이 말하였다. “변하는 것으로 보면 천지는 일찍이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사물과 우리 인간이 모두 무궁무진한 것이니, 또 어찌 부러워할 것이 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삶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는 것은 그 다함이 없다. 안견 역시 이와 같은 심정으로 그림으로 자신의 세계관과 감상을 드러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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