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오! 기자와 책 읽기ㅣ

오만학기자
오만학기자

어느 잡지사에 다니는 한 직원이 취재를 위해 서울의 철거촌을 찾았다. 그리고 어느 세입자 가정의 마지막 식사시간에 함께하게 된다. 화기애애해야 할 식탁에 적막만이 감돈다. 분위기를 이내 감지했는지 식기마저 입을 다문다. 이윽고 고요한 식사시간을 시샘이라도 하듯 적막을 깨며 담장이 무너진다. 마을 전체가 뿌연 흙먼지로 뒤덮인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너지는 지붕에서 떨어진 시멘트 조각을 끌어안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는 차가운 쇠망치를 들고 다니며 담장을 부수는 철거반원들 틈에 섞여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는 잡지사 근처 문구점에서 노트 한 권과 볼펜 한 자루를 산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이야기를 담는다. 『난쏘공』의 시작이었다.

소설은 40년 전 도시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을 그려낸다. 재개발 결정으로 행복동 주민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게 된다. 강제 철거가 두려워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판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기엔 턱없이도 부족한 이주지원금, 거리를 떠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할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산업전선에 뛰어든다. 임금문제 등 부당한 대우를 겪는다. 결국 가장 ‘난장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랑 역시 서툴다. 상대의 무언의 승낙 하에 겨우 젖을 만질 뿐이다. 반면, 있는 자의 모습은 여유롭다. 어떨 땐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철거민들에게서 산 수십의 입주권에 몇 배의 값을 매겨 되팔아 큰 이윤을 남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누군가는 포기해야 했던 그 공부를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버린다. 수많은 여자들과 호텔을 전전하기에 바쁘다.

4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날의 모습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전국의 여러 빈민촌에서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이 추방되고 있으며 노동자의 권리문제도 심각한 적신호가 계속되고 있다. ‘전태일 분신사건’이란 역사적 사실만 기억될 뿐 아름다운 청년이 죽음의 길을 가야했던 현실에서는 조금의 진보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경제발전’, ‘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선 자잘한 개인의 희생쯤은 무시 되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찾겠다.’고, ‘제발 법을 지켜달라고’ 소리치는 국민을 향해 물대포를 쏘기에 급급하고 있다.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처해있는데도 ‘강성노조’느니, ‘기업 때리기’라느니 온갖 억지가 난무하고 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신조어로 자리 잡혔을 정도이다.

『난쏘공』은 한국문학사 최초로 출간된 지 28년 만에 200쇄를 기록했다고 한다. 아울러 ‘20세기가 선정한 한국문학사 10대 사건 및 100대 소설’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경이로운 기록임에는 틀림없으나 무턱대고 반가워만 하기에는 오늘날의 현실이 참 녹록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불편하다. 그만큼 우리네 현실이 이 소설이 출간되던 당시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한, 아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진기한 기록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이 무겁다. 시계 침만 돌아갈 뿐 더 이상의 진보가 없는 우리네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