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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학기자
오만학기자

이 책은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1975년 언어 연구를 위해 인도 북부 작은 마을 라다크에 들어갔다가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자연적 지혜를 통해 천 년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라다크가 서구식 개발 속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엮여있다. 저자는 총 3부작에 걸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오랫동안 지속된 전통문화가 ‘세계화’, ‘획일화’의 모습으로 붕괴되는 모습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모든 몰락의 속도가 그러하듯 정기 어린 강산과 함께해온 라다크 전통의 붕괴 역시 개방주의 정책과 함께 급물살을 타게 된다. ‘느림의 여유’란 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에 큰 가치관을 부여하지 않는다. 견고했던 인간적 연결망이 사라졌다. 이젠 개인주의가 공동체를 앞서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리고 이 머나멀고도 좁은 땅덩어리에서 나타나게 된 현상은 국경과 거리를 뛰어넘어 전 지구적 모습으로까지 연결된다.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문호 개방 정책’의 영향으로 수많은 서구문명과 외국인이 유입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문명 앞에 선 전통문화는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수화기 하나만 들면 될 것을 어명을 전달하기 위해 말을 준비하고 천 리 길을 달린다. 금발 미녀 앞에 선 우리네 아낙네들의 모습은 모두가 광부가 아니냐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오똑한 코, 금색 머리가 미(美)의 절대적인 기준이 돼 버렸고, 출근길의 커피와 신문 한 장은 직장인을 상징하는 코드가 돼 버렸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 듯하다. 특정 문화가 금과옥조가 돼 버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편협해지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인해 수많은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도시와 지방에서의 중용,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의 중용, 그리고 문화와 자연 사이의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 옛날 흥선이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면서까지 국문(國門)을 틀어막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미 복잡한 유대 속에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렇기에 쇄국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가 늘 그러하듯 ‘과유(過猶)’는 ‘불급(不及)’하기 마련이다. 세계화란 어디까지나 전통을 지키고 그 기반 위에서 세워질 때에야 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실수를 답습하고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선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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