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겨울이다. 싸늘한 공기에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더니, 아침 출근길 신호에 걸려 대기 중인 자동차 보닛 위로 겨울비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생각 없이 바라보다 보니 문득 르네 마그리트의<겨울비> 가 생각난다.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는 벨기에에서 태어나 1916년 브뤼셀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그 이후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주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는 방식인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기법은 사물 간 혹은 공간의 비상식적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시각적 충격과 심리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세계 대전을 겪은 작가의 불안감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상실에 대한 고민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의 작품 겨울비(원제 Golconde)는 중절모에 레인코트 차림의 신사가 떼로 등장한다. 영락없는 인간 비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사내는 르네 마그리트가 자신의 작품에 수없이 등장시킨 그의 대표 아이콘으로서 실제 마그리트가 즐겨 착용한 패션이라고 한다. 마그리트는 사람들 눈에 띄는 그것을 싫어했으며 일부러 자신을 숨기려고 했고 그래서 중절모를 쓴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 틈에 자신을 숨겨놓고 자신을 찾아보라 하는 그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화면 속에 등장하는 신사들이 똑같아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과 서로 다른 자세, 그리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한 사람이 차려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다른 사람은 코트 속에 한 손을 찔러 넣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뒷짐을 지고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중절모를 쓴 신사의 모습은 작가가 밝힌 그것처럼 도시를 살아가는 획일화된 익명 도시인의 삶과 소외를 상징한다. 마그리트는 작품 속에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어릴 적 동화 속에 있을법한 환상적이고 매력 넘치는 장면으로 표현하였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그의 작품은 현대미술에서의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고, 대중매체의 많은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으로 분한 키아누 리브스의 변신 장면.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남자 주인공 피어스 브로스넌의 도주 장면, 한국 영화 <전우치>에서 여러 명의 강동원이 동시에 등장하는 신 등 여러모로 해석. 소비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참으로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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