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교육 칼럼ㅣ

정인숙 교육학 박사, 특수교육 전공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작품으로,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은 러시아의 보로디노(Borodino) 전쟁을 소재로 하였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역사 소설일 뿐 아니라 전쟁 상황을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도 ‘전쟁’의 혼돈과 그 속에서 갈망하는 ‘평화’의 의미에 대한 많은 상념을 자아내고 있다. 전쟁은 집단 이기심 혹은 개인의 권력욕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惡)한 정신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면 약자(弱者)부터 희생을 당하고, 싸우고 있는 전사들보다 민간인이 더 많은(약 60%-70%) 목숨을 잃게 된다.

6월이 되면 6·25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하게 되는데, 특히 6·25 전쟁을 직접 겪은 70세 이상의 어른들은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피폐했던 그 시절, 심지어 가족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했던 아픈 기억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일 “티비는 사랑을 싣고‘ 라는 T.V 프로그램에 탤런트 ’김형자‘씨가 고등학교 친구를 찾는 방송이 방영되었다. ’김형자‘씨는 1950년생으로 6.25 전쟁 피난 당시 폭격이 두려워 검은 천으로 빛을 다 가리고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로 부잣집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군수의 딸로 그 당시 성대한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하게 되었고 이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게다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너무나 가난한 삶을 살아 온 과거를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이는 한 사람의 인생사라기보다는 한국 전쟁사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시댁 작은 아버님도 6.25당시 자전거를 빼앗겨, 그 자전거를 찾으러 면사무소에 갔다가 학식이 높다는 이유로 북한군에게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과거사이다.

아직도 나라가 반쪽이 되어 북한의 ‘핵무기’ 시험 등의 이유로 발사되는 로켓만으로도 불안에 떨고 있고 늘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사는 우리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는 지구안의 전쟁 장면을 보기만 해도 섬찟하다. 최근 뉴스에서 접하고 있는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도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의 권력욕과 금전욕에 의해 발발했지만 이로 인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죄 없는 많은 시위대들이 죽어가고 있다. 2011년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는 ‘아랍의 봄’ 민중 봉기로 시작된 반정부시위에 이란과 헤즈볼라가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이에 맞서 사우디, 카타르 등이 반군을 지원하면서 내전으로 번졌고 2014년에는 미국, 러시아 까지 개입되어 10년째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일천만 명이 넘는 난민을 발생시키며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한편 1947년부터 시작된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70년째 이어지면서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무참히 희생되고 있다

전쟁 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과 시체, 피 흘리는 부상자,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집을 떠나 살고 있는 피난민, 일상생활 속의 배고픔과 고달픔, 병듦과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 등 그 어느 것 하나 보장되지 못한다. 10년째, 70년째 이어지는 전쟁을 참아내기에는 인간의 삶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전쟁의 비참함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소망은 오직 평화(平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드는 폭격이나 총성을 듣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하루가 바로 소원(所願)이다. 이 세상에서 평화(平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안전의 욕구(Safety), 사랑과 소속의 욕구(Love, Belonging), 존중의 욕구(Esteem), 자기실현의 욕구(Self, Actualization)의 단계에서 적어도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생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 갈 수 있는 기본 전제는 평화(平和)이다. 우리는 비록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지만 전쟁이 아닌 평화(平和)의 하루를 맞이하고 있음에 구구절절한 감사(感謝)를 표현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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