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시인의 세상ㅣ

운상 최춘식

 

해가 바뀐지 한참 후에 있었던 일이다. 신실하신 인문학 교수님으로 부터 뜻밖의 전문을 받았다. 안산 타임스에 품격있는 글을 보내주시면 어떻겠냐 라는 점잖은 부탁이었다.

주간 신문에 칼럼의 단문 글이라면, 그저 가벼운 시사문제나 인생실록의 글 재미가 아니겠는가? 나는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의 진하고도 날카로운 세태의 평론을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몇 번인가 듣고 느낀 점이 많았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안산은 산업과 문화 예술의 도시다. 이조 실학사상의 원조이신 성호문학의 산실이며, 단원 김홍도의 예술문화관, 심훈-상록수의 신실한 터전이며, 자부심과 긍지가 넘치는 서울예술대학의 모태인 셈이다. 이런 안산시에서 거의 사십년에 걸쳐 물과 밥을 먹고 살아온 주제에, 과연 무엇을 남겼다 할 터인가?

근자에 나의 일상이란, 불민한 가운데서도, 2020년도 8월경,

장편소설 상하 권, -오리지널 얼 럴럴 상사뒤야! 상재한 후, 스스로 생애 마지막 열정을 쏟아서 창작 장편소설, -새 하늘과 새 터전의 레퀴엠, 1=2권을 퇴고 후, 7번째의 추고에 몰두하여 있는 몰아의 지경이 아닌가?

하지만 더불어 글을 써보자는데, 그 무슨 핑계란 가당키나 한 노릇이던가?

전에 한국문단의 중진이신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연필로 쓰고 지우기에 감동을 먹은 적이 있고, 글줄이 막힐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강산을 달려가며 작품을 구상하고, 그저 논다고도 했던 글, -라면을 끓이면서=라는 글들!!

새삼스레 몇 편의 신문칼럼이며, 안산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더듬거리다가 어이없이 글방아를 찧고, 머뭇거리는 자신의 궁상이 민망스럽기도 하다.

마땅히 수월수월 읽히는 글, 맛깔스러운 시사 글이면서도 무언가 더불어 생각과 인성을 천착하는 단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도 했으렷다. 긴 호흡의 장편보다는 중단편에 문학적 진수가 빛을 보인다는 근간의 풍조며, 으레 기가 질리는 안톤 체홉이나, 바다와 노인 유의 명문들을 새삼 들먹이랴? 말이란 하기 쉽고, 글이란 썼다 지우기가 더욱 어렵다라지만, 근간의 사회전반의 말과 글들의 어처구니없는 난잡 상을, 돌이켜본다면 명색이 작가요, 문화인이라 자처하는 내 모습이 과연 어떠하던가?

어디다 삼가 말이라고, 글이랍시고, 늘어놓을 터인가? 진작부터 이렇듯 붓방아질을 하지 못한 게 변명 아닌, 푸념이 되어 버린다. 전통의 인절미 쑥떡 찰떡의 방아질이 아니었다면, 조선시대의 살맛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 붓방아질을 열심히 해보자! 이마에 비지땀을 손등으로 무질러 가면서라도, 이것이 곧 둔재의 달변이라. 하고나자 몇 편의 글귀가 다투어 나서는 듯싶다. 문화 문명이란, 생각과 말을 글로서 밝혀나가는 인간의 거룩한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어둡고 칙칙한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랴? 하여 제발 입을 막고, 코로나 숨 쉬고 살아가면서, 생각들을 깊이 나누라는 일갈이, 재 작금 전 지구촌에 내리시는, 창조주의 뜻이라고도 각성하는 것을!

멀리 갈 것도 없다. 인정을 주고받는 세시 절기가 풍성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서로 만나기를 삼가라. 5인 이상은, 밥도 먹지 말라. 거리두기를 실천하라. 심지어 종교적인 예배 모임마저 감시를 받고 있는 현상을, 외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 잘난 문화문명을 자랑하고, 콧대가 높은 국가들일수록 오히려 허겁지겁 망신살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을 듣고 보며 한숨인 것을 대체 어이하랴.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지구촌의 대세가 되고 말리라. 19세기의 유럽 지구에서 창궐하던 페스트로 무려, 2천만의 생명을 잃었었다. -알베르 까뮈의 대작, -페스트=의 실상이나, 몇 년 전의 메르스 파동이며, 인류는 역병의 창궐과 치열하게 싸워가면서, 의학과 문학과 인간사회는, 진보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드디어 코로나 백신의 낭보도 차츰 다가오고 있지 아니한가? 참고 견디면서 각각 사명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문화문명이, 21세기에 한층 빛을 밝히리라. 문득-붓방아질이라!

-붓방아 짓찧을 적, 검붉은 세상 잡사

그 뉘라 자탄 하리, 짓찧고 찧다보면!

맛살 난 찰쑥개떡, 입맛 돋워 살 맛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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