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황소>는 이중섭(1916-1956)이 1953년 무렵에 유채 물감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황소의 머리가 도전적인 형세로 표현되어 있다. 강렬한 붉은색을 배경으로 삼은 황소가 그 몸을 비스듬히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입을 크게 벌려 웅대한 소리를 내뿜는다.

유연한 곡선으로 물든 노을은 호쾌한 붓놀림으로 그려진 황소를 탁월하게 뒷받침해준다, 황소의 코와 입가는 배경과 같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소의 찰나를 순발력 있게 잡아낸 이중섭의 솜씨가 대단하다. 그 시절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중섭 특유의 과감하고 거친 붓질, 즉 굵은 획과 선을 쓰고 단순하고 선명한 채색으로 표현하였다. 그림을 마주하는 이들이 한번 보면,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력한 인상을 준다. 옆으로 향한 목 근육은 두껍고 튼튼하여 황소의 저력이 한껏 돋보인다. 독자적인 화풍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으리라.

황소는 큰 수소를 말한다. 황에는 누렇다는 뜻도 있지만, ‘크다’라는 뜻도 아울러 담겨있다. 이러한 황소는 어릴 때는 땅을 고르며, 늙어서는 먹이가 되어 사람들을 돕고 희생하는 동물로서 먼 옛날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이중섭은 어렸을 적부터 소를 관찰하면서 자랐는데, 온종일 소를 바라보다가 소도둑으로 오해를 살 만큼 소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스케치를 통해 소의 형태에 통달하게 되었고,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소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시도했다. 이 그림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외양간의 순박한 소를 표현한 일반적인 작품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이중섭만의 독특한 시각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작가 본인의 감정이 화폭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황소>는 그가 가족과 헤어져 있던 시기에 그려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하여 단란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있다. 쩌렁쩌렁한 소리를 발하는 황소의 강건한 기상을 통해, 세파에 지쳐가는 자신이 굳세게 버텨나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다짐했으리라.

 

대지의 빛깔과도 같은 소는 우직하고 성실하다. 이중섭 평생의 소재로서 자리매김한 소는,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한국적 정서와 향토성을 드러낸다. 때론 거친 소의 성질을 통해 강인한 민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소의 큰 눈을 들여다보곤 그저 행복하다고 말했다던 이중섭. 민족화가가 되고 싶다며 늘 이야기 했다던 이중섭은, 그 바람대로 20세기 대한민국의 회화사에 불멸로 남았다.

거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황소를 걸어본다. 그림 속 황소는 뛰어난 표현력 때문인지 늠름하고 잘 생겼다. 우렁찬 포효를 내뿜어 집안의 액운을 다 몰아낼 수 있을 듯하다. 진한 감흥과 강한 카리스마가 빚어내는 매력이 이채롭다. 붉은색을 배경으로 삼은 누렁이 황소와 함께 신축년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2021년 한 해가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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