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누구나 살며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요즘처럼 말이다.

또한, 어느 사람에게는 내면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고 때론 육체적 장애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특히 예술에서는 늘 그 벽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마티스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야수파(Fauvism)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스물한 살이던 1890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평생 근면 성실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여행하거나 투병 생활 중에도 붓을 놓지 않은 그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색채의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써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평탄할 것만 같던 그의 삶은 1941년 십이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후 죽을 때까지 침대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그는 수술을 받은 후, 이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워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티스는 좌절하지 않고 그의 유명한 컷아웃 기법(종이 오리기)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컷아웃 기법은 앙리 마티스의 색과 형, 색채와 드로잉 사이의 영원한 갈등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그가 자신의 다른 작품들보다 컷아웃을 통해 ‘훨씬 더 높은 완성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고 하니 이 종이 오리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마티스는 지중해의 기후와 풍광 그리고 그 바다가 연출하는 빛과 색깔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어디에서 작품 활동을 하거나 어떤 곳을 여행할 때도 오직 지중해를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로 돌아오곤 했다.

지중해는 마티스에게 일종의 종교와도 같았다.

깊이와 한계를 알 수 없고 우주를 통 큰 하나의 유기체로 만드는 바다, 지중해의 영원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무엇일까? 끊임없이 솟구치며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예술혼의 원천.

마티스의 평생은 그가 사랑하는 지중해의 아름다움과 지중해가 그에게 함축하는 의미를 형상화하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기 2년 전 지중해의 아름다운 푸르름을 닮은 <푸른 누드 > 연작이 완성되었다. 오린 종이 위에 과슈를 채색해서 미리 준비된 흰색 종이 위에 콜라주를 하듯 붙이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인체 형상은 극도로 단순해지고, 채색도 오로지 파란색으로 제한되어 간결미를 높였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인물은 약간 고개를 숙이며 한 손은 머리 뒤로 넘기고 다른 손은 늘어뜨려 꼬아서 앉은 다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푸른 몸의 인물은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관절 사이 가위로 잘린 공간으로 인해 운동감이 부여되었다. 그래서 푸른 뭉텅이처럼 보였던 인물이 가위질 된 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실제로 앙리 마티스는 하나의 컷아웃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족스러운 자세를 찾아냈다. 몇 번의 가위질로 금방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적 감각을 캔버스 위에 구현한 것이다. 즉, 앙리 마티스는 조각가가 석재로 작품을 만들어내듯 가위를 들고 색채를 오려내어 만든 작품이 푸른 누드이다

마티스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에는 흥미가 없었다.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풍부한 색을 통해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 되길 바랐다.

어느 작가들이 공허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마티스는 삶의 의미를 찾고 평생 행복감과 기쁨을 추구해갔다. 자아와 세상의 조화 속에서 즐거움으로 충만한 그림을 제작하였던 작가로 말년으로 갈수록 좋지 못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은 변함없이 충만 된 행복과 기쁨으로 낙관적이었던 최고의 멋진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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