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공직생활...건축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합니다"
7전8기 도전끝에 2020년 건축사 자격증 취득, 보람
아버지·형님도 건축사...공사감리에 전문 특화할것
수십년 함께 한 선·후배 디딤돌 역할에 충실 하고파
100대 명산 완등에 자부심,산 앞에서는 겸손이 필수

안산시청 건축과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김경수 건축사는 현역 시절이나 다름없이 스마일이었다. 공직을 마치고 몇년이 흐른 지금 더 건강하고 웃음의 폭도 넓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도 여전했다. 그는 8년동안 공부한 끝에 올해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틈틈이 시간을 쪼갠 결과물이었다. 아버지도 철도 공무원 출신으로 건축사였고 친형도 경북 영주에서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 김경수 건축사는 경북 영주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안산으로 전입을 온 케이스다. 도시가 좋아 수도권으로 올라온 그는 공직 생활이 즐거웠다고 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수십년간 함께 한 선후배들 덕분에 무탈하게 공직을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코로나19로 선후배들을 자주 볼수 없는게 아쉽지만 전화로 소통한다고 했다. 김경수 건축사는 공사감리를 특화하는 쪽으로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양빌딩에서 김경수 건축사를 만나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안산시청 건축과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난 김경수 건축사는 현역 시절이나 다름없이 스마일이었다. 공직을 마치고 몇년이 흐른 지금이 더 건강하고 웃음의 폭이 넓다란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김경수 건축사가 자신의 사무실에 환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있다.사진=최제영 大記者

 

Q건축사로 변신했다.

그렇다. 2020년 10월 27일 개소했다. 오랜 꿈이었고 희망사항이었다. 그런탓에 요즘 생활이 매우 즐겁다. 8년이라는 세월동안 틈틈이 공부했다. 공직생활하면서 시간을 내는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 여러번 실패하고 그럴때 마다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도전했다. 주변에서 도와주고 격려해준 덕분이었다. 시설직 공무원은 노력에 따라 돈을 벌면서 제2의 인생을 살수가 있다. 은퇴후에도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평생 해온 업무이기에 피곤하거나 어렵지도 않다.

Q가족도 건축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버지도 철도 공무원 출신으로 건축사로 일하셨다. 그런 모습이 좋아보였다. 형님도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 경북 영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늘 존경해 왔다. 유전적인 영향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재미있으면서 돈도 벌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다. 은퇴하면 집에서 할일 없어 고민하는 공직자가 많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할 정도다. 70살까지는 청년 소리를 듣는 세상에 살고있다.

Q경북 영주에서 안산으로 전입왔는데.

1989년 2월에 영주시청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거기가 고향이고 해서 시험을 쳤고 합격했다. 그러나 큰 도시에서 근무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안산으로 전입 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1997년 2월 안산시청으로 전입왔는데 즐겁고 행복한 공직생활을 보냈다. 선후배 모두 실력이 뛰어나고 정감이 있는 분들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끔 만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그러질 못하고 있다.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경수 건축사가 2016년 2월 안산시청 건축과장을 명예퇴직하고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경수 건축사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동료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며 “앞으로도 이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사진제공= 김경수 건축사

Q명예퇴직 이유가 궁금하다.

2016년 12월에 명예퇴직 신청을 하고 시청을 떠났다. 정년을 4년 정도 남겨놓은 상태였다. 고민이 있었지만 과감하게 결정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인사 적체로 인해 후배들의 승진이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공무원은 계급사회로 진급을 원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다.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건축사로서 재미가 있다. 민원인을 만나고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나의 역할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Q공직생활때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되도록이면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원인과 관계에 있어서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하려 노력했다. 건축 민원에 대해 가능한 되는 방향으로 해석하려 애썼다. 안되는것은 그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방향으로 행정을 펼쳤다. 지금 모든 건축직 공무원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있다. 시민을 위한 봉사자로 충실해야하고 최대한 시민이 만족할때까지 노력해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모두 고민해야 할때가 왔다.

Q기억나는 일들도 많을텐데.

공직생활중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안산시 공직자로서 나름대로 충실했다고 본다. 안산 고잔 신도시 보상 업무를 본적이 있다. 이 업무는 대부분 기피하는 경향이 많았다. 안산도시발전에 미력하나마 기여했다고나 할까. 고잔 신도시는 지금 안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안산이 이렇게 큰 도시로 발전할 줄은 내 자신도 몰랐다. 계획도시로 출발한 안산이 이 만큼 커졌다. 팔곡 일반 산업단지 추진도 기억나는 일이다. 산업단지 주변의 그린벨트 해제에도 관여했다. 여러가지 민원이 대두됐지만 원만히 해결했다.

Q건축사 업무 어려움은 없나.

대체적으로 건축 불경기로 어려움은 있다. 가장 큰 문제가 건축 기사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예전과 달리 이 업종을 선호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가 적은 탓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인력난으로 건축사 업무는 당분간 힘들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너나 할것 없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Q건축사로 승부를 내야 할텐데.

옳은 말이다. 나는 공사 감리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로 방향을 잡았다. 공사감리를 특화해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한가지를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가 살아 남을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퇴직 공무원들과 어깨를 나눠 함께 호흡하고 싶다. 선후배 건축직 공무원들의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은 거다. 주변에 좋은일도 많이 하려고 한다. 평소 베푸는 삶을 추구했다. 그게 보람이고 희망이다.

김경수 건축사는 산을 사랑하고 흠모한다는 신념으로 등산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했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완등한 이유가 그래서였다고 회고했다. 김경수 건축사가 2018년 7월 수락산에서 마지막 완등을 마치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 김경수 건축사

 

Q100대 명산을 완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산을 좋아하고 산을 타면 힘이 생긴다. 산만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는 못한다. 등산을 좋아하고 매력을 가진지도 오래됐다. 그래서 100대 명산을 완등했는데, 그게 바로 '블랙야크 100대 명산 완등'이다. 퇴직후 1년2개월만에 이룬 쾌거였다. 한국의 유명한 산을 오른다는 것은 나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며 쾌거였다. 스릴과 희열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직막으로 오른게 2018년 7월이었는데 수락산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공직생활이 즐거웠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퇴직후 건축사로 산다는 삶도 더없는 행복이다.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고싶다. 안산시청 건축직 공무원중에도 두명이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 계시다. 모두 훌륭한 공직자라 생각한다. 큰딸 김예지는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지금은 전공을 살려 발레학원 원장으로 있다. 아내는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작은딸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있으면 되는거다. 은퇴후 제2의 인생이 그래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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