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영희의 미술세계ㅣ

김영희 단원작가회 회장

“겸재 노인은 산수를 잘 그렸는데, 80대였음에도 그 필력이 더욱더 신비로웠다. 작은 그림인데도 그 형세는 웅건하고 넓어 신비롭고 그윽했으며, 얕고 깊음과 멀고 가까움에 그 신묘함이 가득하다.”

정선에게 주역을 배웠던 박윤원의 평이다. 이렇듯 예술적 경지가 심원했던 정선이 남긴 작품 중 하나인, <신묘년 풍악도첩>은 그의 작품 생애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1711년에 그려졌다. 이때, 36세였던 겸재는 금화 현감으로 부임한 이병연, 김창흡 등과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고, 그 경관을 백석공의 발문과 함께 13폭의 화첩에 실었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의 주요 명승의 묘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 중, <금강내산총도>는 진경산수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그림은 금강산의 산세를 드높은 곳에서 조망하여 그린 듯한 구도를 띄고 있다. 미점으로 울창한 수목을 표현하고, 상악이라 불렸던 금강산의 날카롭고 뾰족한 형상을 대조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의 생애를 통해 완성될 힘찬 수직선의 화법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먹으로 산의 윤곽을 그려낸 후 조개를 빻아 만든 물감인 호분을 발라 화폭에 반짝임을 부여했다. 아주 재미있는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주의 깊은 관찰력을 통해 수많은 봉우리를 담아낸 모습이 오히려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정선 특유의 과감한 생략이 아직 농익지는 못한 전반기의 그림임을 잘 나타낸다.

 

기암괴석 속에서 갈라지는 길들은 화면을 과감하게 대각선으로 분할하는 효과를 부여함으로, 그림에 이채를 더한다. 화폭 가운데에 자리한 비로봉을 필두로 일출봉과 월출봉, 혈망봉, 그리고 장안사와 비홍교 등이 갈림길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민다. 정선은 이렇게 금강산 구석구석을 묘사함과 동시에, 당시의 지도 제작에서 쓰이던 것처럼 화첩에 세필로 방문기를 채워 넣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낙엽이 쌓인 풍악산, 하얀 눈길이 펼쳐지는 개골산, 새싹이 움트는 금강산, 파란 숲이 우거진 봉래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금강산은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뭇 세인들에게 다종다양한 감상과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 산수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겸재가 일생 내내, 금강산을 화폭에 온존하려 시도하였기에 마침내 <금강전도>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겸재는 금강산을 소재로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는 혈기 넘치는 청장년기부터 시작해서 중년기와 노년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끊임없이 구도를 모색하고 세부를 다듬어갔던 그의 구도자적인 일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크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겠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목표들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집중한 그의 집념을 기리며 나 역시 또 한 번 힘을 낸다. 정선이 풍악산에 오르며 그랬을 것처럼, 가을의 끝자락에서 낙엽 길을 한껏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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