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

코로나19 여파로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연기되었다. 법정 공휴일인 4월 30일(음력 4월 8일)을 윤달 음력 4월 8일인 5월 30일로 옮겨서 봉행한다. 그러나 이태원 이나 인천 등 지역 집단 발생으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지키고 행사를 대폭 간소화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무학대사(1327~1405)는 조선 초의 최초이자 최후의 왕사이다. 원나라에 가서 공부하며 고려 공양왕 시대의 왕사인 나옹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나옹선사는 우리가 잘아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이하 생략)’라는 시로 유명하신 분이다.

무학대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수도 개성을 한양으로 천도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현재의 경복궁은 건국 공신인 정도전이 궁궐을 삼각산(현재의 남산)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대로 지어진 것이다.

다만 인왕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아야 한다는 입지 선택에 무학대사의 의견이 많이 반영 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정도전은 무학대사의 의견을 반영하여 궁궐의 화기를 막기 위해 경복궁 정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연못을 파서 용을 넣어 두었다고 한다.

특히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부처와 돼지 문답은 널리 알려져 있다. 천도를 한 이후 어느 날 모임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태조가 무학대사에게 농을 던진다. ‘대사는 생김새가 돼지 같구려.’ 이에 무학대사는 임금께서는 부처님처럼 생기셨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자리를 즐겁게 하자고 던진 유머인데 미안했던지, 아니면 아부하는 것처럼 들렸던지 연유를 물었다. 이에 ‘돼지는 돼지가 잘 보이고 부처는 부처를 잘 본다’는 대답을 하자 태조 이성계는 너털웃음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을 현실과 대비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상황은 매우 중요한 시기였을 것이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시기는 매우 혼란하고 급변하는 시기였다.

건국 초기의 불안을 조속히 안정시켜야 했으며 개성에 몰려있는 귀족들인 왕씨의 몰살을 강행한 것처럼 엄혹한 시기였다. 민심의 반발도 많았을 것이다. 일테면 고려가 통치이 념으로 내세운 숭불정책이 여전히 백성들에 게는 존속하는 때이기도 했다.

이러한 엄중한 시점에서 왕과 왕사가 나눈 대화는 촌철살인의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역사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국민에게 중대한 역사적 장면 들이 낱낱이 알려지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후세에 남을 멋들어진 이야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둘째로 태조 이성계의 너털웃음을 현재의 상황에 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 초무소불위의 권력자 이성계는 당신이 돼지라는 역설적 가르침을 흔쾌하게 소화했다. 여기에는 어떤 불쾌감이나 뒤끝이 없다.

어느새 세계 선진국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민주사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쳐 나가려는 유림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학대사의 발언은 지엄한 임금에 대한 모욕이요, 역적이 내뱉을 말이었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불교를 탄압할 명분으로 호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학대사 발언의 여파로 보복이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조선의 건국 이념이 결국은 숭유억불로 정립되었지만 태종을 거쳐 세종에 이르도록 여전히 민간신앙은 불교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현재 정치적 입장과 지지 세력 간에 얼마나 많은 반목과 혐오와 비난 일색의 보복이 자행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그리고 그런 연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 해보아야 한다.

셋째로 돼지 눈엔 돼지가, 부처 눈에 부처가 보인다는 말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단 해선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똥 묻은 개가겨 묻은 개를 비난한다든지 성경에서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에 들보는 못 본다는 격언을 생각나게 한다.

타인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이 과잉인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 자유가 언론 방종과 그릇된 여론몰이로 변모한다. 일부러 침소봉대하 고 물어뜯고 흠집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비是非를 따지면서 시비를 만들기도 한다.

최악은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자신의 내면과 기품을 성찰하지 않고서 이때다 하고 공격하고 모멸하려는 것은 허망한 행위 임을 자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벌어지는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시각도 정립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응분의 사회적·법적 지탄을 받을 일이나, 일제 식민지 폐해와 싸운 역사를 지우려는 공격은 매우 불순한 것이다.

이와 같이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 없이 자신을 위해 트집을 잡는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 다.

넷째로 태종 이방원이 정도전까지 죽이는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무학대사는그 시대의 어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함흥차사로 이성계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상황 에서 태종은 무학대사를 통해 이성계를 설득 했다는 장면이 전해진다. 여하튼 한 시대 어른 존재의 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그런 어른이 누가 있는지 눈이 빠지게 살펴볼 일이다.

저작권자 © 안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