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덕기]안산시 상록구 일동

고잔동(古棧洞)-조선시대에는 안산군(安山郡) 잉화면 고잔리라했다가 1914년3월1일 시흥군(始興郡) 수암면(秀岩面) 고잔리로 개칭되었고, 이어 1986년1월1일 법률 제3798호에 의거 안산시 고잔동으로 되었다. 고잔동(유래는 원고잔)은 행정, 교육, 금융, 경찰 등 안산의 중심지다.

남부지역(칠반,도리섬) 농촌 마을이 현존해 있으며, 동부지역(태봉)은 아파트단지(주공8단지), 북쪽지역(마산모퉁이, 걸뚝전나무고개)은 택지, 그 중앙지역(적금,마실,원고잔)은 안산시청을 비롯해 경찰서, 교육청 및 산업은행 등이 자리잡고 있다. 폐동전 고잔동의 자연취락은 걸뚝, 고로리, 고잔역, 너머고잔, 당골, 도리섬, 마산모퉁이, 마실, 안터, 원고잔, 적금, 전나무고개, 절골말, 칠반, 태봉 등이었다,

걸뚝(바라지) - 일제초기 이마을과 동작리 사이에 둑을 막았다 하여 걸뚝이라 불렀는데, 이 때 수문도 함께 설치해 바닷물이 나가면 바라지는 곳 이므로 ‘바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와동에서는 걸뚝, 고잔동에서는 바라지라 각각 칭하였다, 본래 네집이 살고있었으나 1978년에 폐동된 후 택지로 조성되어 1988년부터 새로운 민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로리 - 고잔동에서 취락이 제일 먼저 된 곳이 고로리이다, 전나무고개 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전주 이씨와 광주 안씨등이 세거해 아홉 집이 살았었으나 1977년에 폐동 되었다. 현재는 주택지로 조성되어 유신연립 주택 등이 들어서있다.

고잔역(古棧驛) - 일제{日帝} 강점기{强佔期}인 1937년 수원-인천간 수인철도가 부설{附設}되고 이어 고잔역사(驛舍)가 건립 되었으나 곧 폐쇄 되었다, 그 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서울시 서초구 잠원동)출신 이영섭(李英燮)(제3대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고잔 간이역이 생기면서 역사주변에 민가가 들어섰다, 이 마을에 호수가 늘기 시작한 것은 고잔역과 화랑농장 사이 간척지공사로 개펄이 농경지도 변모되면서 부터이다. 이 마을을 일명 다리간이라 칭하기도 하는데,이는 배의 왕래를 위해 수인철도 부설 때 철교를 가설했기 때문이다,

너머고잔 - 원 고잔 너머에 있는 마을이므로 너머고잔 이라 불렀다, 이곳은 경주 설씨가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고, 이어 남양 홍씨가 세거하면서 홍촌이라 불리워 질만큼 홍씨가 번성했다. 폐동 때(1977년)에는 일곱 집이 있었으며, 현재는 한양빌딩 등이 들어섰다.

당골 - 태봉과 마실 사이에 있었던 마을로, 폐동(1979년)전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반달형 산 기슭에 당이 있었으므로 당골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청주 한씨 선대의 묘가 있었는데, 풍수로 보아 호랑이 혈에 해당되어, 청주 한씨가 이 마을에 당도 하기만하면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안산신도시 개발에 따라 분묘 이장 공고를 했으나, 결국에는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무연 분묘로 처리되었다. 당골은 해주 최씨가 세거한 이래 파평윤씨, 풍양조씨, 밀양박씨등이 세거했고, 폐동전에는16호가 살다가 원주민들 대부분이 와동으로 이주했다, 옛 당골 마을은 현재 경안 고등학교가 들어섰으며, 이 곳은 교육가요, 독립운동가 였던 최승만(崔晩)(1897-1984, 신동아부장, 인하대 및 제주대학장 역임)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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