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동거하는 사람들

김학중칼럼(새안산레포츠교회 담임목사)

고통이라는 단어를 가장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는 상황은 바로 병이 걸렸을 때이다. 질병이라는 상황은 인간에게 고통을 가장 확실하게 전해 준다.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바로 고통이라고 말하는 통증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통스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가? 이렇게 고통이라는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을 다양한 부정적 양상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래 TV난 인터넷 매체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촬영하여 방영한 내용이 많은 것 같다. 희귀 난치병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으로 고생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도 그렇고, 엄지공주라 불리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질병으로 키가 보통의 반만 한 여인의 이야기도 그렇고 사랑의 가위손이라 불린 중년의 이발사가 중풍으로 쓰러진 이야기도 모두 고통을 동반한 삶의 고스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통증과 아픔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밝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는 게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희귀난치병인 CRPS라는 질병의 통증은 아주 얇은 종이 같은 것이 닿아도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하는 그런 질병이라고 한다. 이 병은 원인이 어떤 육체적인 충격에 의해 알 수 없는 과정으로 이런 질병이 생긴다고 한다. 질병의 원인보다는 그 증상들이 심각하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혹 누군가 모르고 통증 부위를 만졌다치면 거의 기절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신경안정제를 필수 약으로 상비하고 다닐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들을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 그들로 밝음의 이미지를 주는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골형성부전증으로 키가 자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뼈가 선천적으로 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잘 부러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사는데 있어서 큰 장애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몸으로 3천193m의 히말라야 푼 힐 정상을 올랐다는 점이다. 이 여인의 삶에는 고통이라는 가시가 곳곳에 즐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밝게 살아간다.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비장애인도 올라서기 힘든 정상까지 밟으면서 말이다.

30여년간 무료로 이발봉사를 벌여 ‘사랑의 가위손’이라는 별명까지 받은 중년의 남자는 갑작스런 중풍이라는 질병으로 고생하지만 밝음의 이미지를 잃지 않았다. 이 남자의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치료비를 성큼 내고들 있다.

인간의 육체적인 질병에 통증뿐만 아니라 장래에 대한 희망, 현실적인 이유에서 오는 절망을 다 경험하면서도 고통과 동거하는 사람들은‘밝음’의 이미지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과연 고통이 그렇게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을텐데. 고통과 동거하면서 언제나 웃음을 짓는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진실함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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