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나는 격류는 얼지 않는다

안산시 자유산악회장

주공 그린빌 7단지 입주자대표 회장

어려움을 희망으로

어렵게 자란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한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면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게 세상사이기도 한다.

강인산업개발 백남오(48) 사장. 그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의 일이라면 내일처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원곡 주공 2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추진행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시 백남오 비상대책 위원장을 잊지 못할 것이다. (중략) 바로 어린시절부터 힘든 과정을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고 있는 백남오 사장이 들려주는 가슴 따뜻한 그의 인생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산골소년의 상경기

나의 고향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는 어떤 곳일까? 호기심과 동경은 늘 나를 도시로 불러들었다. 어린시절 개구장이면서도 유달리 정의감이 넘쳤던 나는 친구들의 어려움에는 내일처럼 나섰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욕심이 많아 열심히 했다. (중략)

어린시절 다른 사람들보다 혼자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사색하는 시간도 많아지면서 나름대로 독서도 많이 했다. 겉으로는 쾌활하고 적극적이었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움 속에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또한 자존심이 강해서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존심이 나를 이겨내는 힘도 되었지만 고생을 사서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또 다른 꿈을 향해

(중략)한창 경제가 활성화되던 70년대 후반 건축 경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이렇게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강원석이라는 친구로부터 무역업을 하자는 동업 제의를 받았다. 일본에서 수입한 이온수기와 맥반석을 취급하는 동일상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영업이 주로 외상으로 이루어져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았다. 더구나 당시 큰손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장영자 사건의 여파는 내가 하는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큰 피해를 입었다.(중략)

이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마마전기 노선기 상무님께서

“젊은 사람이 한때 사업에 실패했다고 이렇게 자포자기가 되면 어떡하나. 부산에 부동산 사업을 하는 후배를 소개시켜 줄 테니 그 곳에서 다시 한번 일어서게.”

하시며 상무님의 후배가 하는 부동산업계에 소개를 해 주셨다. 얼마동안 지난 일은 잊어 버리려고 열심히 배우며 일했다. 그러나 실패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고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중략)

그래,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수없는 나의 다짐을 위로로 삼으며 재기의 날을 기다렸다. 어떤 삶이든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신은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부천의 박 사장님이 조건 없이 1천만원을 빌려 주셨다. 그 일을 계기로 부동산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관광농원을 개발 쪽으로 눈을 돌려 강원도 평광 쪽의 땅을 구입하는 곳에 고객들이 많이 몰렸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자금을 담당하며 중간 단계역할을 하던 아는 형님의 배신으로 고객들의 배상을 고스란히 물어줘야 했다. 당시 아파트와 땅을 처분하는 등 다시 또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때의 심정은 돈도 돈이지만 믿었던 형님의 배신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20대 한창 세상의 꿈도 많을 나이에 나는 벌써 남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일들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시 일어서기란 쉽지 않았다. 부동산에서 무역업으로 전환하였다. 그런데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4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퇴원하고 보니 직원들의 무책임함으로 사무실은 엉망이었다. 그때 신일석재 전문님이 석재부분의 침대용 돌판재 사업이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어 중국왕래 제의를 받게 된다. 나는 또 다른 기회라 생각하며 2년간 중국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다시 한 번 무한한 꿈을 지니게 했다. 넓은 대륙 속에 ‘백남오’라는 이름 석자를 새기고 싶다는 당찬 야망이 있었다.(중략)

소중한 나의 가족

94년도 37세의 적지 않는 나이에 아내 엄은경을 만났다. 서초동에 부동산 사무실을 갖고 있을 때였다. 평소 지인이었던 탄광업을 하시던 분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순박한 첫인상에 호감이 갔다. 강원도 태백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아내와 몇 개월을 서로 오가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내 성격상 다정다감하지 못했지만 아내의 착한 심성에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해도 후회 없을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IMF 맞으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또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힘든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흔들림 없이 내 곁을 지켜준 아내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늦은 결혼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짧았던 아쉬움에 자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아들만 둘인데 첫째는 영기이고 둘째는 춘기이다. 비록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놀아 주진 못하지만 아들들이라서 그런지 통하는 점이 많다. 특히 둘째 춘기는 수시로 차 조심하라는 등 아빠의 안전까지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다. 키우기는 엄마가 다 하는데 그 보상은 내가 받는 것 같아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바쁜 탓에 가족들과 온전한 시간을 같이 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의 가정이 있어 난 행복할 수 있다.

작은 소중함 그리고 큰 기쁨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거품 나는 격류는 얼지 않는다.’란 속담이 떠올랐다. 이 속담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자에게는 어려움이 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좌절을 겪을 때도 일어설 수 있는 오뚜기 같은 정신력. 바로 백남오 사장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평소 봉사정신이 남다른 그는 현재 아파트 입주자대표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도시에서의 아파트 생활이 개인주의로 흐르는 경우가 많아 화합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10월 안산 아파트 주민 대항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단지의 열세를 극복하고 1등을 차지하며 화합을 과시한바 있다. 그러한 결과는 꾸준하게 주민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의 주민들에 대한 애정은 그칠 줄 몰랐다. 안산시 분리수거 최우수 아파트로 선정된 이야기. 그 어느 아파트보다 참여율이 높다는 것 등 자기 주변의 일부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백남오 사장은 신도시 아파트회장단 협의회 수석부회장을 맡아 최근 안산의 현안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고잔신도시 악취문제와 신도시 상가활성화 문제해결에 앞장서려는 모습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진솔한 삶이 보이는 듯 했다.(글:윤미선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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