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그림을 사랑하는 남자

국제환경조형연구소 대표

창조의 아침 미술교육원장

상록구청 미술자문위원

빛과 공기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따사로운 햇살이 그대로 느껴진다. <루앙 대성당>의 빛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색감이나 ‘인상, 해돋이’ 에서 보이는 햇살의 움직임들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마치 마술의 세계와도 같다. 이런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아닐까 싶다.

<창조의 아침 미술교육원>의 박홍규(39) 원장은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 또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불후의 명작을 남긴 숱한 화가들의 그림에 감동하고 도전받고 마음 밭을 소중히 일구어 냈을 터이다. 모네와 더불어 국내작가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좋아한다는 박홍규 원장의 감성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따뜻함, 부드러움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열정.

박 원장이 운영하는 <창조의 아침 미술교육원>은 안산에서 뿐만 아니라 경기도내 입시학원 중 입시지원 합격률 100%의 신화를 창조해 내고 있다. 그가 안산에서 학원을 운영하기 전 안산에서 홍대미대 합격자를 단 1~2명 배출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결과다. 박 원장의 열정과 신념이 없었더라면 서울대, 홍대 지원 합격률 100%라는 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학교종이 땡땡땡

매트위에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땀방울. 코치의 호각소리에 맞춰 숨 가쁘게 움직이는 운동부 선수들은 지금 상대방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난 통 집중할 수 없다. 이상한 일이다. 며칠 전부터 줄곧 내 시선 속에 머물러 떠나지 않는 풍경 하나. 미술반 아이들의 야외스케치 모습. 이젤, 화구통, 새하얀 캔버스, 색색가지 물감들. 머리가 어지럽다. 자부심으로 들먹거렸던 전라도 대표 태권도부 선수라는 이름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일렁이는 가슴을 다잡아보았지만……. 코치의 불호령은 대단했고 야구방망이가 부러질 정도로 맞고 나서야 운동부에서 나올 수 있었다. 학교생활 처음으로 운동대신 나도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이 있구나 하는 희열을 느낀 순간이다.

운명적인 만남 1

박 원장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기계체조를 비롯해 태권도까지 운동만 해오다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며 미친 듯이 캔버스에 자신을 쏟아 부었다. 거칠고 사납고 승부욕에 점철된 유년시절의 힘겨움을 풀어 놓고 싶었으리라. 수년간의 한결 같았던 일상을 한순간에 놓아버리게 만든 미술의 세계는 박 원장에게 마술과도 같았을 것이다. 남은 중학교 시절을 박 원장은 무섭게 그림에 몰두했고 예체능계의 유명한 상인 ‘전북의 별’이라는 명단에 오르며 도지사상을 수상하기까지 이른다. 당연히 고교 진학은 예술고를 생각했고 기왕이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는 명문고(서울예고)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중략) 그러나 다행히도 박 원장을 따뜻하고 진솔하게 대해 주셨던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박 원장은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은 박 원장의 숨은 열정을 발견하고 독려해 주셨고 마음의 방황에서 마침표를 찍게 해 주셨다. 그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박 원장은 그곳에서 그렇게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신입생에서 스타 학원장이 되다.

박 원장은 실기에서는 늘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기초학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번번이 원하던 대학(홍대)에 떨어지고 만다. 군 입대를 코앞에 뒀기 때문에 필사의 각오를 하고 서울 유명 입시학원에 근로 장학생 생활을 자처하며 공부를 하여 결국 원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세종대 미대에 합격하는 영광을 맛보게 된다. 면접 때와 실기시험 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학생부 성적과 출석률 그리고 학력고사의 다소 저조한 성적으로 유일하게 합격한 박 원장. 특유의 빤빤함과 자심감을 갖고 교수들에게 근성의 뚝심을 보여주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회자될 만큼 그의 이력은 교수님들 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림에 대한 실력도 인정받게 되는 대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시간은 잠시 머문 뒤 이내 박 원장 앞에 놓인 위태로운 현실만이 사납게 출렁거렸다. 집안형편이 날로 힘겨워지고 미술재료는커녕 추가등록조차 못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박 원장은 다른 길로 눈을 돌렸고 미술학원 강사의 길로 들어선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목적 뿐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의. 식. 주가 해결될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뜻밖의 전화위복을 맞을 줄이야. 박 원장의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일파만파 번져 나갔고 이른바 '속기법' 이라는 하나의 미술기법을 우연히 미술관련 잡지에 연재하면서 그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한다. 박 원장이 강의하는 학원은 수강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원장 이름의 미술학원을 열기에 이른다. 소위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인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알 수 없는 것

지난 3년여동안 나에겐 참 많은 이들이 있었다. 첫눈에 반한 나의 첫사랑과 결혼도 했고, 엄청난 돈도 긁어 모아 봤고 또 그만큼 날리기도 했다. 하룻밤 꿈만 같다.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슬픈 아내와 아이 그리고 술로 인한 병든 몸 뿐이다. 왜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걸 왜 그렇게도 쉽게 잃어 버렸을까. 다시 기회가 온다면 난 어떻게 할까. 아니 과연 나에게 기회는 다시 올 수 있을까……. 평생의 동지 오평석(현창조의 아침 미술교육원 공동원장) 친구가 새로운 둥지를 틀었단다. 그곳 안산으로 나 지금 출발한다.(중략)

제2의 고향 안산에서

생활비도 없이 그야말로 부채로 출발한 <창조의 아침 미술교육원>은 승승장구하며 숨가쁜 신화창조의 길을 오늘도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혹독한 시련의 값을 치루고 찾아온 기회를 박 원장은 인생의 일대 전환기라 다짐하며 매진 또 매진하고 있다. 요즘엔 새로 진행중인 조형물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이와 더불어 국전을 염두에 둔 작품에도 몰두하고 있다. 한국수채화대전 특선의 수상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작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때를 기다려라' 는 마음속의 좌우명을 항상 되뇌며 박 원장은 모든 일에 심사숙고와 더불어 성숙된 자세로 임하고 있다. 학원 수강생들도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아닌 동역자로서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들이라 여긴다는 박 원장의 제자 사랑은 퍽 특별하다. 그들에게 미술을 지도하기 이전에 마음의 화폭을 먼저 비우고 확고한 신념을 구축한 뒤 비로소 그림을 그리게 한다는 박 원장의 교육철학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내 자신의 천적은 나 자신뿐이다

그래. 내 자신의 적은 나 자신 뿐이다. 나를 이기지 못하고 누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과 임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루어 낼 것이다. 마음이 또 급해진다. 그러나 절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나를 다스리며 나갈 것이다. 이미 지나간 나의 인생을 목 놓아 안타까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힘겨움을 나는 이겨냈고 앞으로도 이겨낼 것이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가.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을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글:전인영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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