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전)동산고 교장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동화작가 카를로 콜로디(1826~1890)의 ‘피노키오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피노키오는 ‘소나무 열매인 솔방울’이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피노키오가 말성꾸러기 어린이에서 신앙을 가진 건강한 어린이로 키우기 위해서 지은 책이 안드레의 ‘피노키오의 기도’와 연계하여 읽으면 좋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대충 완성하지만 곧 집밖으로 뛰쳐나가 말썽을 부리며 다양한 세상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를 창조한 인간 제페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항상 가슴 조아리게 만드는 일을 계속 저지른다. 유혹에 저항하고, 폭력에 대응도 해보지만 거듭되는 실수로 후회를 하며 사람과 똑같이 되겠다는 열망은 버리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순수창조와 같이 창조행위로 장난감 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이 사람처럼 행동을 하고, 피조물이지만 창조주의 모습으로 지음을 받았고 창조주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자로서의 인간’을 극렬히 대비시켜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창조성은 인간의 일상의 삶에 녹아 있는 특징이며 일상의 삶이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21세기는 부자를 더 부자 되게 하며,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배를 하는 비극의 시대이기에 인간은 이 시대를 비극적으로 대하기를 거부해야만 한다.

인간이 비극적으로 대하기를 거부하기 위해서 수많은 합리화를 하게 되는데 그 중 한가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계속 자랄 수 있다’는 속성과 ‘도저히 감출 수 없다’는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피노키오에게 푸른 요정은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을 한다. “하나는 다리를 짧아지게 하는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이란다”이라고.

전자는 바로 탄로가 나서 멀리 가지 못하는 거짓말이고, 후자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만들게 하는 악순환으로 계속 자라는 거짓말을 가르친다. 인간은 곧 탄로가 나는 다리가 짧아지는 거짓말보다는 당장에 밝혀지지 않는 코가 커지는 거짓말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예로, 20세기 초에는 무솔리니 파시즘 정권에서는 ‘국민교육’용으로 피노키오를 활용한다. ‘나무 인형’에서 ‘진짜 소년’으로 재탄생하는 내용을 10살 안팎의 어린이들을 파시스트소년단으로 키우는데 적극 차용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이탈리아는 그 영향으로 거짓말과 소매치기가 많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어른에게는 ‘코’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위대한 파시스트를 만드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마초적인 파시즘을 주입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래서 ‘코가 크면 강한 남성’이라는 엉터리 속설도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20세기 중반에는 ‘피노키오의 모험’은 월트 디즈니가 재해석을 하여 선악의 대립구도가 한 층 선명하여 갖은 어려움에도 함께하는 가족애와 책임감이라는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며 모험과 함께 도덕을 가르치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을 하였다.

이제 21세기에는 4차 산업 인공지능(AI)과 연계되어 불에 탄 피노키오의 다리를 제페토가 다시 만들어 주듯이 인간의 육체가 교환 가능한 부품으로 연결되는 알레고리를 형성하여 가고 있다.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류 도전에서 피노키오의 모험은 새롭게 읽어보면 좋은 어린이 동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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