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장미

어느 해인가 장미가 피던 계절이었다. 해질녘 나는 중앙초등학교, 중앙중학교, 예술인 아파트를 지나는 길을 한가로이 걷고 있었다. 도로엔 달리는 차들 뿐 인도로 걷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는데 누군가 자꾸만 내 옷깃을 잡아 끄는 것이었다. 슬몃 두려운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빨간 꽃을 무겁게 매단 장미넝쿨이 아닌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장미가 담장 밖으로 팔을 뻗어 지나는 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난 저것은 오월의 함성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 두었다.

장미꽃들이 금방이라도

거리로 몰려나올 듯

아파트 담장에 매달려 함성을 지르고 있다.

감추어 두려 해도 들어나는 붉은 감정들이

거리를,

온 도시를 뒤덮는 오월.

세상을 활짝 피어나게 하는

강렬한 사랑의 데모 현장이다.

-오월의 데모 전문-

다시 오월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도 떠나길 싫어 했던 것 같았었는데 어느덧 산과 들을 울긋불긋 물들이던 봄이 지나고 여름을 알리는 오월이 왔다. 안산의 오월은 해마다 장미의 세상이었다. 시청의 담장, 경찰서, 교육청과 같은 관공서는 물론이고 학교 울타리, 크고 넓은 아파트 단지의 담장마다 빨간 넝쿨장미가 함성을 지르듯 한꺼번에 피어 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장미에게 잡혀 가던 길을 멈추어 서면 장미는 상기된 붉은 얼굴로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거침없이 항의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래야 살 맛 나는 것이 아니냐고. 좋은 날씨가 많은 오월 날씨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장미처럼 붉게, 환하고 빛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미가 피는 계절이면 밖에서 살다시피 했다.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 가는 일도, 공과금을 내러 은행에 가는 일도 즐거웠다. 그런 세월이 10년이다. 그래서 그 일은 내가 안산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도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제 또다시 오월이다. 장미가 피기도 전 벌써 설레인다. 온 도시에 일제히 빨간 넝쿨장미가 피어나면 나는 또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담고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헤메이리라.

강원도 봉평에서는 지방자치 단체에서 메밀꽃을 심어 늦은 여름이면 온통 메밀꽃으로 뒤덮힌다고 한다. 안산을 상징하는 꽃이 장미라면 더욱 안산에 장미가 많았으면 좋겠다. 일년 중 오월 한 때만은 안산이 사랑의 물결로 넘치는 고장이 되도록. 지금보다 훨씬 더 뜨거운 정열로 타오를 수 있도록. 오월, 사랑의 데모 현장을 구경하러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 수 있도록... 안산이 온통 장미의 물결로 바다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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