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대부포도 소포장 시장개척 장본인

안산시 대부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대부포도다.

대부 포도하면 당도가 높고 육질이 좋아 맛 좋은 포도로 정평이 나있다.

이런 대부포도의 오늘이 있게 한 사람으로 박정호 대표(56)를 꼽을 수 있다.

박 대표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증조부때부터 대부도에 터를 잡고 살아 왔으니 현재 박 대표의 손자까지 6대가 대부도 지킴이로 살고 있다.

대부도 지킴이로 살고 있으면서 박 대표가 해온 일들은 대부지역의 실정을 가장 잘 고려하고 추진해 온 일들이 대부분이다.

옹진군의회 부의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농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도서 1특산물 갖기 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이때부터 대부도를 포도 특산지로 키우게 되었다. 이 시기는 지금부터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도는 작은 섬으로 어업과 농업이 주요 수입원이었던 시기다. 박 대표가 1도서 1특산물 갖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대부도는 포도를 특화품목으로 키우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포도재배를 하는 농가에 포도봉지와 박스를 도 시비로 지원 받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지원은 현재까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대부포도가 이 같은 지원을 받으면서 맛과 향에서 전국 특산물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는 등 그때부터 대부포도가 전국적으로 우수성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포도 비가림 재배로 상품 경쟁력 갖춰

박 대표는 대부포도가 품질경쟁력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너도나도 논을 밭으로 만들고 무계획적으로 포도나무만을 심는 바람에 과잉생산 되기에 이르자 최근 몇 년사이에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됐다.

“맛 좋은 대부 포도가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곧 대부농민들이 노동의 댓가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게 됩니다”

그러면서 소포장으로 포장 단위를 줄이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3년여전부터 노력한 결과 올해는 이전까지 10킬로그램 박스 단위로 출하되던 포도가 5킬로그램 단위로 작아지면서 가격은 거의 10킬로그램 가격을 받게 되어 판매도 수월해지고 그 만큼 가격 상승의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이제는 핵가족화 되어 특히 과일의 경우는 소포장이 훨씬 구매력을 당길 것으로 내다보고 3년전부터 저는 개별적으로 소포장화 해서 포도를 출고하기 시작했고, 올해는 소포장 단위가 대부도 전지역으로 파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앞을 미리 내다 볼 줄 아는 감각은 이미 박 대표가 정미소를 운영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는 당시 한가마 80킬로그램이 지배하던 쌀 시장에 20kg과 5kg쌀을 포장해 내 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바 있다.

또 포도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비 가림 재배를 통해 출하시기를 앞당겨 미리 출시함으로써 훨씬 높은 가격으로 포도를 출하 할 수 있는 것도 박 대표의 발빠른 도입이 큰 힘이 됐다.

이런 안목은 어려서부터 정미소, 가마공장, 막걸리 양조장, 염전운영, 대장간, 운수 사업 등 여러 일들을 두루 섭렵해본 경험에서 나온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이처럼 대부도를 기반으로 이일 저일 안 해본 일이 없는 박 대표이지만 안산시 도시계획이 확정되지 않아서 대부 지역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신해 줄 길이 없어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다.

“현재 대부지역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살면서 지은 부채가 농.수.축협에 전체 700억원이 넘습니다. 이는 어업이나 농업 포도 농사를 지어서는 더 이상 빚에 이자도 갚기 어려운 형편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대부 농민들은 그간 연육이 되면서 땅 부자가 되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농사를 지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출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조상대대로 지켜온 땅을 팔아야 그나마 덜 빚지고 사는 형편입니다. 이제 대부동민들에게는 부동산 경기라도 살아나서 땅을 팔아야 그나마 농사지으면서 늘어만 갔던 부채를 갚을 수 있을 뿐입니다”

박 대표는 대부도가 관광특구화 되어 방아머리나 탄도항은 주말 휴식 공간으로 발전하고 영흥이나 시흥시의 배후 도시화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야 대부도를 터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대를 이어 살아 나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대부도 지킴이로 살면서 여생 보내고파

구구절절이 박 대표에게는 대부 농민들의 한숨과 현실적 어려움이 묻어 나온다.

박 대표는 이런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2004년 11월 법무, 변호, 세무, 행정 등 대부동민들이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에 걸쳐 대부 출신 선후배들의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는 <대부발전 연구소>를 열게 됐다.

현재 박 대표가 살고 있고 아들과 손자가 앞으로 계속 살아갈 대부도를 위해 그간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일을 하면서 묵묵히 대부도를 지켜 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그간 소홀했던 초등학교 동창회를 부활시켜 농촌의 작은 학교로 소외된 채 생활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도 학교 동문들이 나서서 동문회도 활성화 시킬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추석부터 예비모임을 갖고 대부초등학교 37회 출신 동기들이 뜻을 모아 동문회 출범을 위한 기초 작업들을 해 나가고 있다.

“저의 선친께선 특별히 배우신 것은 없었어도 대부고등학교 설립 당시 쌀 40가마를 교실 짓는데 써 달라고 희사 하셨을 만큼 지역사회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셨습니다. 그 유지를 받들어 저희 동문들도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선배들이 돼 주어야지요”

박 대표는 동문회 일과 대부포도를 경쟁력 있게 키워내는 일 등으로 하루 일과가 바쁘기만 하다.

(글:박공주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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