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미<아동문학가>

지난 월요일,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에 사시는 85세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여자, 그러니까 나의 친정엄마가 잠들어계시는 가평 경춘공원 묘지에 다녀왔다. 매년 한두 번씩 가는데, 작년부터 조금씩 힘들어하시더니 올해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영 불편해하는 노쇠한 아버지의 모습에 괜히 울컥하며 화도 나고 걱정도 앞선다.

친정엄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지금으로 보면 고칠 수도 있는 병이지만 그때는 암이 불치의 병이었기에 힘들게 투병하다 돌아가시는 것을 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47세! 지금의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한창의 나이에 4남매를 두고 떠나는 여자는 얼마나 속상하고 무서웠을까. 할 수만 있다면 몇 년 더 살고 싶었을 것이다.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엄마를 보내는 내 마음 또한 세상이 텅 빈 것 같이 멍하니 두려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사춘기를, 결혼을, 출산을 경험하면서 점점 엄마의 빈자리는 서러움으로 커졌다. 아버지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며 참 많이도 그리워하고 울었다. 차츰 남편이 채워주고 아이들이 채워주면서 엄마는 점점 내 마음 깊숙이 간직되어 이제는 아주 가끔씩만 꺼내어본다.

아내를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 살기 바빴고 아버지를 남자로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그냥 우리의 아버지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묘를 쓰다듬으며 그 옆에 당신의 묘를 쓰려고 이미 조치를 취해놓으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갑자기 35년 홀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눈물겹도록 존경스럽고 멋지게 보이면서 한편 안쓰러웠다. 아버지의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던 것이구나.

아버지는 교육자셨고 목회자셨다. 이미 은퇴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로와 축복의 기도를 하는 아버지의 어눌한 말투에서 늙은 아브라함의 모습이, 이삭의 모습이 보였다. 그 늙어 추해진 모습에서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35년을 한결같이 이미 하늘나라에 가있는 당신의 여자와 엄마 없이 사는 불쌍한 자식들밖에 모르셨다. 그런 아버지의 걱정과 관심을 알기에 나는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세상에 아내가 있어도 끊임없이 연애를 일삼고 또 가족들 가슴에 피멍들게 하면서 새장가 드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내가 죽고 없는 어찌 보면 자유로운 세상에서 홀로 그것도 35년을 홀로 사신 아버지는 과히 천연기념물이다. 내가 아는 한 연애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분이 왜 없으셨을까? 있었다 하더라도 하늘에 있는 당신의 여자 보기 미안해서 또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까 꺼렸을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깔끔하고 깐깐하신 성격이다.

새삼 하늘에 계신 엄마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부럽다. 살면서는 자주 다투기도 했겠지만, 평생을 한 여자에 대한 의리와 사랑을 지켜온 남자를 남편으로 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늘나라 주변 분들의 부러움을 한껏 사고 계실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의 여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연상되니 내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도 나의 친정아버지처럼 그리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아내밖에 모르는 ‘아내바보’라 그럴 거라 상상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사실 지금의 한결같은 사랑만으로도 벅차고 고맙다. 보통의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그만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사랑 하나면 모두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이 여자의 힘이다. 그걸 모르는 남자들이 이 여자 저 여자 껄떡(?)대다가 모두에게 버림받고 패가망신까지 당하는 것이리라.

미혼, 기혼을 떠나서 가벼운 연애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살다보니 20여 년을 함께 살고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인 35년을 떨어져 살면서도 처음 결혼서약대로 한 여자에게만 의리를 지키며 살아온 내 아버지의 사랑이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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