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동명블루밍어린이집 원장>

생각해 보면 자식을 위해 부모가 고단한 것은 한 때에 불과하다. 아무리 잠을 안자는 아이도 3년만 잘 키워 놓으면 깨지 않고 잔다. 평생 먹여 줘야 할 것 같은 아이도 5년만 키우면 자기가 알아서 먹는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아이는 엄마 손에서 확 벗어나 자기 일을 알아서 챙긴다. 그 다음부터는 고단하게 몸을 움직여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정말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자체가 예쁘고 즐거워서 다른 생각이 안 든다. 꽃을 키우는 사람은 꽃봉오리를 보면서 탄성을 자아내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강아지의 새로운 행동을 보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다는데,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어찌 그보다 덜 하겠는가.

지난 겨울, 나는 아이 둘을 한 달 동안 캠프에 보냈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이제 서서히 부모 곁에서 떨어져 자신들만의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살짝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꿈꾸었다.

그동안 아이들과 지지고 볶았으니 한 번쯤 여유 있게 나를 돌아보면서 사 놓고 쌓아 두기만 했던 책도 읽고, 미뤄 둔 연구 자료도 볼 참이었다. 아이 둘이 떠나고 하루 이틀은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얻은 나만의 시간을 기쁘게 온몸으로 즐겼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이상하게 힘이 빠지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몸도 괜히 여기저기 아픈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서 텅 빈 아이들 방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들의 옷을 꺼내서 얼굴을 묻고 울었다. 결국 난 미뤄 둔 연구를 하기는 커녕 ‘아이들이 언제 오나’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한 달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아이 둘을 낳은 것이며, 내가 그 어떤 커다란 업적과 성취를 이룬다 해도 그것이 아이들 키우는 것보다 내게 더 의미 있고 행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가끔 아이가 어릴 때 신었던 신발을 꺼내 본다. 그러면 아이 목 뒤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비볐던 기억,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의 환희, ‘엄마’ 하고 환하게 웃으면 달려오던 모습이 가슴 한가득 느껴진다.

그리고 내 옆의 아이를 본다. 엊그제까지 아기이던 아이가 어느새 내 어깨만큼 자라 있다. “엄마, 내가 이렇게 컸어. 엄마, 왜 이렇게 가벼워 졌어?”라며 자기 힘센 걸 자랑하는 아이. 목 뒤의 보송보송하던 볼록 튀어나온 부분은 없어졌지만 나를 업은 정모 역시 기특하고 장하다.

아기일 때는 그때가 제일 예뻐 보일 것 같더니, 아이들은 크면서 점점 더 예뻐져 나를 더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든다. 그래도 나는 옛날에 아이들을 더 예뻐해 주지 못한 것,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 더 너그럽지 못했던 게 항상 아쉽다.

누군가 내게 지금 막 아이를 낳고 좌충우돌하는 초보 엄마들에게 해 주고 싶은 충고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초보 엄마들이여! 생명을 키우는 위대함과 행복을 ‘지금’ 만끽하라. 지금 아이와 볼을 비비고 사랑한다 말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

정말 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매순간의 ‘지금’을 행복으로 채우면 영원토록 행복할 수 있다. 부디 생명을 키우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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