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아카데미, 서거원 전 양궁국가대표 감독 강의
세계 제일 한국 양궁 실력은 거듭 훈련의 결정체

본지 부설 안산시CEO아카데미 초청강사로 나선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현 인천계양구청)는 1956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용인대 특수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국가대표 양궁 코치를 시작으로 1990년 국가대표 남자양궁 감독, 2000년 국가대표 양궁 총감독 등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양궁연맹 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따뜻한 독종’이라는 책을 펴낸 서거원 강사는 우리나라 양궁이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부단한 노력과 근성으로 일궈낸 것임을 알리며 CEO 들고 이같은 마음가짐과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최고의 경영자와 사업체가 될 것이라는 확신어린 강의를 펼쳤다. 제38회 서거원 강사의 CEO 아카데미 강의요지를 게재한다. <편집자주>

여러분, 8천848m는 뭘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로 에베레스트산의 높이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인류 최초로 등정한 사람은 뉴질랜드의 힐러리 경(卿)입니다.

그는 1953년 정상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고(故) 고상돈 씨인데, 힐러리 경이 성공한 뒤 24년 만인 77년 세계에서 58번째로 정상 정복에 성공했습니다.

24년 동안 58번째라면 1년에 약 2명꼴로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2009년에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답은 저도 모릅니다. 세계산악연맹의 2004년 집계에 따르면, 1년간 무려 330명이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2005년부터는 집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아예 그 수를 세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고정관념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때문에 베이스캠프를 2천여m에서 6천여m로 옮긴 결과입니다.

누구나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양궁으로 돌아가면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1년 앞두고 우리나라는 활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력이 출중한 우리나라 선수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 미국이 장난을 쳤습니다.

‘어떻게 저런 활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도 깜짝 놀랄 만큼 획기적인 신제품을 미국의 한 회사가 만들었는데, 그 회사가 한국에는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 버렸습니다.

도전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 본사에까지 찾아가 올림픽에 쓸 활 4대만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우리 선수들은 애틀랜타올림픽 단체전에서 접전 끝에 1점 차이로 미국에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개인전도 미국 선수에게 져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여자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 2개, 남자개인전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의 성적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신문마다 ‘한국 양궁 빨간불!’이란 큰 글씨로 1면 톱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때 저희는 일주일간 정말 처참하게 당했습니다.

한국 양궁이 추락한 이유가 뭐냐, 지도자들이 세계적인 흐름도 읽지 못하고 우리 선수들만 구닥다리 활을 갖고 출전했더라, 훈련도 주먹구구식이다,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 등등. 그렇게 무능한 지도자로 매도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세미나장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은 초.중.고 양궁대회에 외제 활을 사용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우리나라에는 장난감 활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업체가 단 3군데 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에 두군데가 양궁협회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활로 대회를 열다 보니 정말 예측불허고 운칠기삼일 정도로 경기가 재미있게 진행됐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뜨거운 열정을 가진 리더가 성공을 이룰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 가장 무서운 것이 편견이었으며 심지어 결탁의혹까지 받았지만 양궁지도자들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장비 국산화로 세계 양궁 장기집권

그에 맞춰서 뜻밖의 행운이 찾아 왔습니다. 바로 IMF였습니다. 활 한 대의 가격이 400만원이나 하던 고가인데다 IMF가 겹치자 수입활은 한 대당 1천만원이 넘어서 6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 활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활로 2000년 세계대회 금 4개중 3개를 독식했으며 2004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이후 한국 활을 구입하려는 외국팀들이 물밀 듯이 몰려 왔으며 그 업체들은 그야말로 대박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2007년 독일 세계양궁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32강이 결정나고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활 100%가 우리나라 제품인 것을 알았을 때 그 뿌듯함은 이루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훈련시키는 감독들도 100% 국산이라는 사실에 정말 양궁에서만은 우리나라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을 보고 느꼈을 때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우리나라 국기인 태권도도 머리보호대와 가슴보호대는 아직도 수입품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양궁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한국의 제품을 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10년 동안 만이라도 집중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열 달 산고(産苦)를 거쳐 아이를 낳듯, 우리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도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러 선발됩니다.

투명한 선수 선발제도가 최고 양궁실력 갖춰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은 2008년 남녀 랭킹 100위까지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100등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무척 치열합니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씩 전국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2주일만 훈련을 소홀히 해도 바로 100등 밖으로 밀립니다. 국내에서 남녀 랭킹 80등 정도 하면 세계 랭킹 5위 안에 듭니다. 이런 선수들이 100명씩 모여 열 달간 열 번의 대회를 치르는 겁니다.

그 열 번의 대회가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것도 아닙니다. 1차전은 체력이 좋은 선수가 기록이 잘 나오도록 대회 방식을 만들어놨습니다.

2차전은 정신력이 뛰어난 선수를 가려내기 위한 방식입니다. 11월 강원도에서 대회를 치르는데, 선수들은 닷새간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밖에서 경기를 합니다. 11월의 강원도는 춥습니다. 비라도 오면 손가락이 곱아 감각조차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정신력 싸움인 겁니다.

3차전은 담력, 4차전은 집중력, 5차전은 근성, 6차전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이런 식으로 대회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치릅니다.

7차전은 최종 8명에서 4명이 남는 대회이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 발 한 발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를 잘 극복하는 선수가 좋은 점수를 받도록 경기방식을 만들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 만이 성공비결

이렇게 7차전이 끝나면 100명에서 남녀 각 4명이 남습니다. 이 선수들이 국내 대회 한 번, 국제대회 두 번을 더 치릅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잘하는데 국제대회에만 나가면 헤매는 선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나머지 한 명을 걸러내면 최종적으로 남녀 각 3명이 올림픽 대표선수가 됩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기 전 선수들을 충주호에 있는 65m짜리 번지점프대에 데려갔습니다. 좀전에 제가 뭐라고 했죠? 가장 먼저 지도자가 시범을 보여야겠죠? 그렇게 시범을 보이고, 그 다음에 선수들을 뛰게 하는 겁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번엔 감독이 다시 뛰었습니다. 뛰고 내려와서 또 30분간 설득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감독이 올라가서 다시 뛰어내리고, 그런 식으로 충주에 간 첫날 감독은 아홉 번이나 뛰어내렸습니다.

나중엔 말이죠. 감독들이 “제발 나 좀 살려줘”라고 통사정합니다. “선생님이 불쌍하지도 않냐. 이게 며칠 째냐?” 소속팀 감독은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국가대표 선수 길러낸 죄 밖에 더 있습니까? 불려와 덩달아 뛰는 겁니다.

사흘째 되던 날, 두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으아~” 소리치며 일어나더니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며 번지점프를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뛰어내려 성공한 겁니다.

그 선수에게 “두어 번 더 뛰어내리자”고 해서 두 번 더 시켰습니다. 결국 그 선수가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원칙의 기본은 '원칙'

누구라고 하면 다 알 정도의 간판급 스타선수입니다. 그 선수가 시위를 당기기 위해 섰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물은 발목까지 차오르고, 이럴 때 활을 쏠 수 있겠습니까? 조준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제한시간은 흘러갑니다.

이 때의 갈등은 말도 못하죠. 그러다 선수가 순간적으로 바람이 잦아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나 봅니다. 쐈거든요. 한데 바로 그 순간 ‘빠방’ 하면서 천둥이 쳤고, 그 선수가 깜짝 놀라 0점을 쏴버리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2관왕에 세계선수권 2관왕, 아시안게임 2관왕. 누가 봐도 세계적인 스타인데 그 한 발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탈락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원칙을 지키는 게 옳습니다. 그 덕에 고등학교 1학년의 어린 선수가 여자 4명이 남는 단계까지 올라왔습니다. 무명 선수도, 나이 어린 선수도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 셈입니다. 원칙의 기본은 원칙입니다.

그러한 원칙없이 파벌간의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 종목 대표선발은 그야말로 개판이 됩니다. 한국 양궁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의 정상을 지키는 것입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과 중국의 여자양궁 단체 결승전 때 일입니다. 중국 선수들이 다 쏘고 한국 박성현 선수가 마지막 한 발을 남겨놓은 상태였습니다. 박 선수가 10점 만점을 쏘면 우리가 우승이고, 9점을 쏘면 중국과 동점으로 재경기, 8점을 쏘면 우리가 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변화없는 매일의 연속은 실패한 삶

당시 박 선수가 쏠 준비를 할 때 중국 선수들이 방해하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싶을 정도로 중국 선수들이 미웠죠. 그런데 그 순간 박 선수의 눈빛을 보고 놀랐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가 박 선수에게 “그 마지막 순간, 마음상태가 어땠느냐”고 물었습니다.

박 선수의 첫마디가 그러나 “죽는 줄 알았어요”였습니다. 겉으로 그처럼 늠름해 보였지만 속으론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는 겁니다.

바로 그거였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박 선수가 아닌 다른 어떤 한국 선수가 거기에 서 있었더라도 10점 과녁을 꿰뚫을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상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가정해 끊임없이 적응훈련을 하며 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CEO 여러분들에게 다섯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자신과의 무한경쟁을 시도하라고 말하겠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2%가 생각만하는 98%를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고 통찰력을 키워 미레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준비된 실패만이 실패를 준비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항상 자신과의 무한경쟁을 시도하라

세 번째,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라고 부탁합니다. 40여 년 전 양궁이 국내에 도입되던 당시의 100대 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 뿐입니다. 나머지 88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각자의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열정입니다. 열정 없이는 어떤 위대한 비전, 거대한 꿈도 잉태될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성공의 순간, 위기를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영국가대표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 이후 작은 성취감에 지난 세계대회에서는 단 한 종목도 예선통과를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성공할 때 위기를 느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다섯 번째,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가질 것을 부탁합니다. 열정의 무서운 적은 태만이고 매너리즘입니다.

살다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도 모레 같고,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차’ 하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실패한 삶입니다.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10년간 집중해서 파고들면 다들 경지에 오릅니다. 그런 꿈과 희망을 갖고 인생의 승부를 걸 수 있는 CEO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 박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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